“자동차 디자인 혁명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차량의 디자인이 다양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기차 디자인의 핵심은 그릴로 꼽힌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엔진이 없다. 따라서 엔진을 냉각시키기 위해 통풍구 역할을 하는 라디에이터 그릴도 필요 없다. 전기차는 모터와 배터리를 차량 밑에 깔기 때문에 공기를 아래로 흘려보내 부품을 냉각한다.
그릴은 차량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기능을 한다. BMW의 ‘키드니 그릴’과 기아의 ‘호랑이 코’ 등 브랜드별로 독특한 디자인을 내세웠다. 전기차는 라디에이터 그릴 공간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어 브랜드별 독창성이 과거보다 더 요구된다. 그동안 전기차는 주행거리, 충전속도 등 기능에서 차별화했지만, 앞으로는 디자인에서도 상품성이 갈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뉴스는 “자동차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더 커졌다”고 강조했다.
테슬라는 전 모델에 그릴 자체를 없앤 대표적인 ‘안티 그릴’ 완성차 업체다. 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차의 상징이던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앤 것은 테슬라의 ‘안티 엔진’이라는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도 보닛이 앞부분을 크게 덮으면서 그릴을 없앴다. 각진 모양의 헤드라이트가 시선을 끌어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디자인을 보완했다는 평가다. 기아 EV6도 호랑이 코 형태를 남겼지만 기존보다 그릴 크기가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현대차는 내년부터 양산하는 전기차 아이오닉 6 등에 전면 그릴에 빛이 나는 ‘라이팅 그릴’ 적용을 추진 중이다. 그릴의 조명 패턴과 색깔을 통해 자율주행 기능을 쓰고 있는지, 충전 중인지 등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BMW는 전기차 i4와 iX 디자인에서 그릴을 수직으로 올리고 검은색 격자무늬를 써 전기차 형태로 키드니 그릴을 재해석했다. GMC가 생산할 예정인 허머EV는 알파벳이 들어간 6개 블록을 전면에 배치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