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한국시간) 테슬라가 'AI 데이'를 열었습니다. 슈퍼컴퓨터 '도조'와 머신러닝 칩 'D1', 그리고 사람을 닮은 로봇 '테슬라봇'을 공개했습니다. 행사 직후 SNS엔 '내용이 너무 어렵다', '기대 이하다'라는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즈, CNBC 등 전통 미디어들은 머스크의 쇼맨십으로 치부하기도 했고요. 뉴욕 월스트리트의 금융·증권사 대부분은 "테슬라 봇은 절대적 의문덩어리"(웨드부시), "2022년 프로토타입 공개는 낙관적인 생각"(웰스파고), "테슬라의 내부 통합, 그리고 촛점을 넓히는 데 대해 우려한다"(번스타인) 등의 부정적인 분석을 내놨습니다.
지난 주말 '테슬라 AI 데이' 동영상을 몇 번 더 봤습니다. 곱씹어볼수록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사 시작 전 약 40분간 강제로 감상할 수 밖에 없었던 일렉트로닉음악(EDM), '완전자율주행'이란 표지를 단 자율주행차 운전석 영상, '자율주행기술→슈퍼컴퓨터→반도체 칩'으로 80분 간 이어진 박사논문(?) 수준의 프레젠테이션(PT), 그리고 PT 막판 10분 간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테슬라 봇'까지. 오래 전부터 준비한, 촘촘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된 것 같습니다.
테슬라는 행사 이후 쏟아질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모양입니다. 이날 행사에서 PT를 맡았던 테슬라 고위 엔지니어는 "월스트리트(투자은행 애널리스트들)와 시장이 이곳 AI 데이에서 일어난 일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며칠이 걸려도 이상할 게 없다"(it would not be surprising if it takes wall street and the market a few days to fully absorb what is happening here)고 월가 애널리스트들을 살짝 '디스'(비판)했습니다.
놀랍게도 테슬라의 예측대로 행사 직후 부정적 전망 일색이었던 월가에서 지난 월요일(24일)부터 테슬라에 대한 긍정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글로벌 IB 모건스탠리와 '돈나무 언니'로 캐시 우드가 이끄는 아크인베스트가 테슬라 AI 데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분석 보고서를 내놓은 게 대표적입니다. 원래 두 회사는 테슬라에 우호적이지만 보고서는 상당한 공을 들여 테슬라가 유망한 이유를 적었습니다. 행사 직후 거래일인 20일 1%대 상승률을 기록했던 테슬라 주가도 23일(현지시간) 월요일엔 3.8% 넘게 올랐습니다. 영화 매트릭스 BGM으로 시작한 AI 데이...'완전자율주행' 강조AI 데이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셨던 분이라면, 시작부터 약 47분간 이어진 'pre-event' 시간에 되풀이됐던 몇 곡의 EDM을 기억하실겁니다. 테크크런치 등 현지 IT 전문매체에 따르면 이 음악들은 영화 '매트릭스'의 BGM이라고 합니다. 매트릭스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1·2·3편으로 제작된 SF·액션 영화입니다. 올해 '매트릭스 4'가 약 18년 만에 개봉할 예정입니다. 머스크가 트위터 등에 몇 차례 매트릭스를 패러디 '짤'을 올릴 정도로 심취해있다고 하고요. 영화 내용은 많이 아시다시피 AI에 의해 가상현실 속에서 통제를 받는 인간, 이를 벗어나기 위한 인간들의 사투를 그리고 있는데요. 이날 행사의 주제가 AI였던 것을 감안하면 의미심장한 곡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참고로 머스크는 행사에서 AI 로봇에 대해 "인간이 로봇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고 아마도 그것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로봇이 '인간에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당신은 아닐지도 모른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영상에서 눈길을 끈 것은 음악과 함께 약 10분 간 상영된, 테슬라가 자율주행차 운전석 영상입니다. 행사즈음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테슬라의 자율주행시스템인 ‘오토파일럿’의 안전성에 대해 공식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쉽게 말해 테슬라의 자율주행은 '완전자율주행'이 아닌데 마치 완전한 자율주행인것처럼 소비자들을 오인하게하고, 이것이 사고로 연결됐는 지 살피겠다는 건데요. 테슬라는 이날 영상 상단에 완전자율주행(Full Self Driving)이란 표현을 붙여놨습니다. '조사해도 문제 없다'는 테슬라의 항변이자 자신감일까요. 24일 머스크가 테슬라의 최신 FSD 베터버전에 대해 "대단할 게 없다"며 저자세를 보이긴 했지만 테슬라 내부에선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에 교통안전국의 조사에 대해선 걱정할 게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합니다. 데이터 수집 경쟁력 경쟁업체 압도..."AI 관련해선 테슬라가 최고" 강조'pre-event'를 통해 어느 정도 암시를 준 테슬라는 약 80분 동안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합니다. 크게 세 가지인데요.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자율주행과 AI 관련해서 테슬라가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AI의 핵심은 '데이터' 입니다. 많은 데이터는 AI의 성능을 고도화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자율주행의 예를 들면 AI가 같은 도로라도 다양한 상황을 나타내는 데이터에 기초해 학습해야 자율주행 완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슬라의 AI가 야생동물이 뛰쳐나온다든지, 차선이 흐릿한 상황을 담은 도로 데이터를 기반으로도 학습을 해야 다양한 상황에서 차량이 대처할 수 있게 되는겁니다.
테슬라는 다른 차 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데이터를 이미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100만대 넘는 테슬라 차량에서 카메라로 촬영한 도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테슬라엔 계속 도로 데이터가 쌓이고 있습니다.
둘째로 데이터를 학습해 AI 기술을 고도화하는 슈퍼컴퓨터 '도조'를 공개했습니다. 테슬라가 획득한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입니다. 도조는 일본어로 무술 등을 수련하는 '도장'을 뜻한다고 합니다.
데이터의 양이 많고 종류가 다양해도 이를 제대로 학습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집니다. 도조는 운전자가 눈을 통해 식별한 정보를 뇌에서 빠르게 판단하고 엑셀을 밟거나 핸들을 돌리는것과 최대한 유사하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게 목표라고합니다. 이를 위해 테슬라는 약 4억8000만개의 입체적인 사진과 영상을 도조에 주입하고 학습시킨다고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사진 데이터만으로 대응하기 돌발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다양한 시뮬레이션도 진행했습니다. 테슬라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형성된 3억71000만개의 이미지도 도조에 집어넣습니다. 테슬라는 내년부터 도조를 본격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테슬라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도조가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낼 수 있도록 '휘발유' 역할을 하는 반도체도 자체적으로 개발했습니다. 머신러닝 전용 칩 'D1'입니다. D1은 초미세공정으로 불리는 7nm 공정에서 생산됩니다. 테슬라에 따르면 D1칩은 비슷한 스펙의 타사 칩보다 연산능력은 4배 빠르고 전력효율은 1.3배 높다고 합니다. 크기도 작습니다. 게다가 기본 유닛 단위로 쿨러를 달아 AI칩의 가장 큰 고민인 '큰 전력 소모'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도조는 D1칩의 성능에 힘입어 수억개 수십억개의 자료를 0.001초 만에 분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머스크가 하고 싶었던 말, "테슬라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테슬라는 PT 10분을 남기고 휴머노이드(사람을 닮은 로봇)인 '테슬라 봇'을 공개합니다. 테슬라 봇 소개는 일론 머스크가 직접 맡았습니다. 저는 테슬라가 로봇을 공개한 게 "테슬라는 뭐든 다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테슬라의 로봇에 관심을 뒀습니다. 저도 로봇을 주제로 테슬라가 로봇 사업에 진출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쓰긴했는데요. 지금 돌이켜보면 로봇은 도조와 D1으로 고도화되는 테슬라의 AI 기술을 담는 하나의 '그릇'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스크가 하고 싶었던 말은 "테슬라의 AI 기술은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 이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만들 수 있다. 자율주행차도 바퀴달린 로봇이기 때문에 인간을 닮은 로봇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실제 PT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머스크는 “도조의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로봇이 아닌) 다른 사업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테슬라의 로드맵대로라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율주행 비행기 같은 기계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머스크는 자사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이런 식으로도 표현했습니다. 테슬라의 축적된 데이터와 기술을 원하면 경쟁사라도 제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공짜로 넘기진 않고 일정 수준의 로열티를 받겠죠. 이 얘기를 들은 전통차 업체들은 꽤나 자존심이 상했을 것 같습니다.
머스크를 백열전구, 축음기, 영화카메라 등을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에 비견하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머스크의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에디슨과 닮았다는 겁니다. 월가의 가장 유명한 애널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모건스탠리의 아담 조나스는 투자 메모를 통해 "역사는 훌륭한 교사"라며 "일론 머스크의 기술개발 노력과 1870~1880년 토마스 에디슨과의 노력은 유사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에디슨의 가장 위대한 발명은 밤을 세워가며 상업용 제품을 완성한 R&D 실험실"이라며 "오늘날 머스크는 테스라와 스페이스X의 R&D 실험실에서 불가능이 가능할 때까지 도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모건스탠리 "머스크를 보면 에디슨이 떠올라"머스크가 희대의 사기꾼이 될지 제2의 에디슨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미래 기술을 향한 그의 열정과 도전만큼은 인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머스크의 발언을 허풍이라고 폄하하지만, 그와 테슬라가 개발하고 상용화한 전기차, 자율주행차는 지금도 전 세계 도로를 누비고 있습니다.
테슬라의 AI에 대한 로드맵과 로봇 개발 등이 과연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요. 저는 '허풍이 아니다'라는 데 한 표를 주고 싶습니다. AI 데이 전후로 서학개미들의 테슬라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데요. 성공투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뉴스레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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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