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아무도 내 삶을 책임질 수 없다

입력 2021-08-23 17:18
수정 2021-08-24 00:27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국민의 삶을 국민이 책임져야지 왜 정부가 책임지느냐”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첫 번째 대선 출마 때부터 “국가는 국민의 삶을 전 생애주기에 걸쳐 책임져야 한다”는, 소위 ‘포용국가론’을 주창했다. 국민은 행복할 권리만 있고 책임과 의무는 없게 하겠다는 달콤한 약속이다.

이런 언사(言辭)에 익숙해진 국민에게는 최 전 감사원장의 발언이 매우 어색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 댓글 중에는 “그럼 정부는 왜 존재하느냐?” “그럼 국민이 세금은 왜 내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국민의힘의 한 국회의원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건 대통령의 기본 책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기본 책무는 국민 삶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국민 재산을 보호하고 대내외 적으로부터 국민 생명과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유와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관리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그 책임을 대신할 수 없다. 당연히 지난 4년간 대통령과 정부 인사 누구도 국민의 삶을 책임지지 않았다. 애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이유는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눈송이가 그렇다. 1885년 최초로 녹지 않은 눈송이를 검은 벨벳 위에 놓고 사진을 찍은 윌슨 벤틀리가 발견한 것은 약 5000장의 사진 중에 같은 모양의 눈송이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구촌 79억 명 중 똑같은 인간은 하나도 없다. 개인은 저마다 독특한 기술, 재능, 야망, 특징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개인에게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다”고 말할 수 있다.

진보 사회개혁가라고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밤낮으로 수많은 개혁을 설계한다. 교육·의료·복지·조세·정치·검찰 개혁에 사법부 개혁까지 하겠다고 덤빈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위해 계획을 세운다면 각 개인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각 개인에게 알맞은 맞춤형 계획을 수립할 수 없다. 국민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 설계자에겐, 각 눈송이가 지닌 고유의 아름다움은 의미가 없듯이 각 개인이 가진 차이는 의미가 없다. 획일적이 된다. 그걸 ‘평등’이란 이름으로 포장한다.

개인을 배제하면 개인의 인간성도 배제되며 인간의 본질, 자유의지 따위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 국민은 물건이나 다름없이 정치인이 설계한 목표 달성을 위해 ‘처리해야 할 대상’이 될 뿐이다. 그래서 집값 안정화 조치, 최저임금 설정, 근로자의 근무시간 통제, 가격상한제 같은 조치가 획일적으로 시행된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 이 재원은 결코 정치인 개인의 기부로 조성되지 않는다. 강탈한다. 방법은 조선시대에 확립된 아주 익숙한 방식이 있다. 지방 관아 무기 상태를 점검한다는 공문이 내려가면, 지방 수령이 고을 부자를 부른다. 녹슨 무기만 남은 무기고에 새 무기를 채워야 한다. 부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물고(物故)를 당하고 재물이 압수되든가, 그 전에 채우든가.

전 국민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권력집중과 중앙계획경제가 필수다. 주요 기업을 공기업화한다. 정부는 가진 자에게서 재산을 뺏어 그것을 분배하는 일에 몰두한다. 관리비용이 막대하게 소요되고, 거대한 공무원 조직이 필요해진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공무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엄청난 규제가 생성된다. 수많은 복잡한 규제는 비능률적이고 무능한 관료주의 정부를 만든다. 정권 핵심 인사에게 절대 권력과 분수에 맞지 않는 특혜가 주어진다. 저항하는 자를 설득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쉬운 방법으로 간다. 폭력 동원.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고 설치면 집단·통제·폭력의 전체주의 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 개인은 없다. 오히려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작은 정부, 제한된 정부여야 한다.

정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고 하면 자신의 삶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건강한 도덕심과 의지는 사라지고, 정부에 의존하는 비루한 정신이 만연한다. 이것이 가장 큰 해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