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기업들이 탈모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환자 수만 1000만 명에 달하는 거대 시장인 만큼 제대로 개발하면 항암제를 능가하는 ‘캐시카우’가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다음달 인벤티지랩을 시작으로 올릭스, 에피바이오텍이 속속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이들 기업은 기존 치료제에 비해 투약 횟수와 부작용을 줄이는 쪽으로 탈모 치료제 개발 방향을 잡았다. 투약 횟수 줄이는 데 초점탈모는 암처럼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지만, 환자에게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질환이다. 환자 수는 국내에만 1000만 명에 달한다. 그만큼 시장 규모가 크다는 얘기다.
탈모의 원인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대사 과정을 거쳐 바뀐 물질인 디히드로테스토스테론(DHT)이 모낭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를 치료할 수 있다는 ‘자칭’ 탈모약은 시중에 널려 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제품은 미국 화이자가 개발한 ‘바르는 약’ 미녹시딜과 미국 MSD가 만든 ‘먹는 약’ 프로페시아(성분명 피나스테리드) 등 몇몇에 불과하다. 다만 이들 치료제도 투약을 중단하면 머리가 다시 빠진다. 성 기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탈모 시장에 국내 바이오업체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유전자치료제 개발사인 올릭스는 남성형 탈모치료제로 개발 중인 ‘OLX104C’에 대한 임상 1상을 내년 시작한다. 흉터, 황반변성, 간질환 위주였던 리보핵산(RNA) 치료제 영역을 탈모로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상할 물질의 미국 특허를 이달 초 취득했다. 지난 5월엔 임상용 치료제에 대한 위탁생산 계약도 마쳤다.
올릭스의 후보물질은 탈모 부위에서 DHT와 결합하는 단백질의 발현을 유전자 단위에서 억제해 치료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 홍선우 올릭스 연구소장은 “투약 기간을 기존 1~14일에서 1~2개월로 늘리는 게 목표”라며 “탈모 부위에만 주사하면 되는 만큼 전신 부작용 가능성도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벤티지랩은 다음달 호주 임상 1상을 시작한다. 인벤티지랩은 피나스테리드의 체내 방출 속도를 늦춰 최대 3개월에 한 번만 맞아도 되는 주사제로 개발하고 있다. 약물 방출 시간이 길어지면 부작용이 줄어든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인벤티지랩은 임상 3상과 제품 허가·판매를 대웅제약에 맡기는 등 강력한 우군도 확보했다.
“발모 세포 주사로 직접 심는다”에피바이오텍은 아예 모발을 생성하는 세포를 심는 방식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모발의 씨앗 역할을 하는 모유두세포를 환자로부터 떼어내 배양한 뒤 두피에 주사하는 방식이다. 2년마다 한 번씩 맞으면 모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내년 하반기 임상 1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활용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범용으로 쓸 수 있는 탈모치료제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면역세포 활동을 억제하는 ‘JAK 억제제’를 활용한 탈모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탈모도 면역질환의 하나로 판단하고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로 써온 JAK 억제제를 활용하는 실험에 나선 것이다. 화이자(임상2b·3상)와 일라이릴리(임상 3상) 모두 올해 내놓은 임상에서 약효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JAK 억제제는 혈전 등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화이자와 일라이릴리가 이를 활용한 탈모치료제를 내놓더라도 여전히 안정성 높은 탈모치료제에 대한 수요는 있을 것”이라며 “투약 횟수와 부작용을 줄이는 데 집중하는 국내 바이오기업의 개발 전략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