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나흘간 잠행을 끝내고 언론중재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윤 전 총장은 거대 여당의 입법 폭주에 대해 “언론재갈법” “권력 비리 은폐를 위한 움직임” 등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당내 갈등의 상대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다른 경쟁 주자에 대해선 비판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 ‘경선버스’ 출발이 임박한 가운데 가급적 내부 충돌을 자제하고, 대여투쟁에 집중하려는 행보라는 분석이다. 대여투쟁·정책행보에 집중윤 전 총장은 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중재법에 대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재갈법”이라며 “이 법이 시행되면 권력 비리는 은폐되고 독버섯처럼 자라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 박종철 사건, 국정농단 사건, 조국 사건, 월성원전 사건 등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들은 모두 작은 의혹에서 시작됐다”며 “이 정권이 무리하고 급하게 이 법을 통과시키려는 진짜 목적은 정권 말기 권력 비판 보도를 틀어막아 집권 연장을 꾀하려는 데 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는 “대통령의 진심은 무엇인가”라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언론중재법 개정 추진을 당장 중단시키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에도 투쟁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는 “법안이 처리된다면 위헌 소송과 같은 법정투쟁과 범국민연대 같은 정치투쟁을 병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잠행을 멈춘 건 “대선 유력 후보로서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까지 논란이 큰 법안에 대해 심각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윤 전 총장 측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공세의 화살’을 외부로 돌려 자칫 ‘진흙탕 싸움’으로 비칠 수 있는 내부 갈등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와 한 차례 갈등 국면을 연출한 윤 전 총장은 이 대표와 원희룡 전 제주지사 간 자신을 둘러싼 공방에도 잠행을 이어왔다. 일절 관련 발언을 삼가면서 질문을 받을 수 있는 공식 행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윤 전 총장 측은 새로운 뇌관이 될 여지가 있는 ‘비대위 설’에 대해서도 강력 부인했다. 일부 언론이 “윤 전 총장이 이 대표를 사퇴시킨 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김병민 윤석열 캠프 대변인은 “황당무계한 가짜뉴스”라며 “관련 내용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를 향해 ‘사퇴’를 언급한 캠프 인사를 해촉하는 일도 있었다. 민영삼 윤석열 캠프 국민통합특보는 이날 “이 대표는 대표 사퇴 후 유승민 캠프로 가서 본인 맘대로 하고 싶은 말 다 하든지, 아니면 대표직을 유지하며 대선 때까지 묵언 수행을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고, 논란이 일자 특보직을 내려놨다. 거세지는 당내 공세다른 경쟁 주자들의 윤 전 총장을 향한 공세 수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원 전 지사는 이날 한 방송에 나와 “윤 전 총장이 당에 들어와 놓고는 정책은 안 만들고 계파만 만들었다”며 “나라를 운영할 국정철학이나 국정에 대한 비전에 대해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고 했다. 홍준표 의원도 경험 부족을 언급하며 “대통령을 하겠다는 건지, 대통령 시보를 하겠다는 건지”라며 “벼락치기로 출마해서 하루 하나의 망언으로 시끄럽다가 잠행하면서 국민 앞에 나서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대위 설’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 대표 체제를 좀 그만 흔들라고 강력히 경고한다”며 “지금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대위로 간다는 건 대선을 망치자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출된 지도부에 대해서도 그러는데, 선출되지 않은 지도부가 무슨 권위를 갖고 대선을 치를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캠프 대변인을 통해서도 “정권 교체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당권 교체에만 군침 흘리고 있는 건 아닌지 윤 전 총장이 직접 해명하기 바란다”고 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앞서 “윤석열 캠프는 꼰대정치, 자폭정치를 당장 그만두라”며 “국민과 당원에 의해 선출된 젊은 리더를 정치공학적 구태로 흔드는 꼰대정치”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번주 선거관리위원회를 공식 출범하고 비전발표회를 여는 등 본격적인 경선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버스 출발이 임박하면서 당내 주자들의 견제와 검증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란 관측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경선이 시작되면 정책뿐 아니라 윤 전 총장 측이 예민해 할 수 있는 가족 문제에 대해서도 검증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