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모두 다 퇴근한 문 잠긴 병원. 도어록 비밀번호 소리가 들리더니 조심스럽게 문이 열린다. 자기 집처럼 병원에 들어와 태연히 활보한 여성은 의사도, 병원 관계자도 아닌 스토커였다.
최근 법률 전문 유튜브 로이어 프렌즈는 유명 정신과 의사가 혼자 있을 때 병원에 몰래 침입한 스토커의 모습이 담긴 CCTV를 공개했다. 피해자는 유튜브 닥터 프렌즈 출연자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오진승이었다.
그의 사연을 접한 이경민 변호사는 CCTV를 공개하며 "민감하고 충격적인 장면이라 생각될 수 있어 이 영상을 공개하는 것이 맞는 건지 당사자인 오진승 선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나라에 스토킹 관련 피해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고 스토킹 처벌법이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겠다는 취지에서 CCTV를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오 씨는 개원해 병원을 운영 중이다. 사건 당일 업무를 종료하고 오 씨는 홀로 남아 화초에 물을 주고 있었다. 잠겨있던 문이 갑작스레 열리더니 일면식 없는 여성이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CCTV 속엔 여성이 자연스럽게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이 고스란히 포착됐다.
화초에 물을 주던 오 씨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문쪽으로 서서히 걸었다. 여성은 오 씨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변호사는 "여성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오진승 선생이 있으니 깜짝 놀란 것"이라며 "그는 스토킹 대응법을 숙지하고 있었어서 바로 시행했고, 여성에게 나가라고 의사표시를 했다. 그제야 여성은 병원 밖으로 후다닥 나갔다"고 설명했다.
오 씨는 도어록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여성이 아직도 밖에 있을까 봐 한참을 병원 안에 머물렀다. 퇴근하고 내려가 보니 건물 밑에서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성민 변호사는 "성인 남녀 완력 차이가 아니더라도 숨어있다가 갑자기 흉기를 휘두르면 성인 남성이라도 답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위협을 느낀 오 씨는 병원 비밀번호를 바꾸었다. 보름 뒤 점심을 먹고 자리에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쪽지 한 장이 남겨져 있었다. 의심이 든 오 씨는 CCTV를 돌려봤고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같은 여성이 또 병원에 들어온 것이다.
이 변호사는 "비밀번호를 바꾸었는데도 이를 알아내서 들어왔더라. 지난번 비밀번호가 너무 쉬웠나 싶어 이번엔 여덟 자리에, 연속되는 번호도 아니었다. 직원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번호인데 누르고 들어와 집처럼 활보하고 다녔다. 이미 구조를 아는 것을 보니 한 번만 왔다간 게 아닌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여성의 침입은 계속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 씨가 다른 의사와 이야기를 하던 중 여성이 병원에 들어와 잡았다고. 경찰에 신고해 여성의 인적 사항까지 특정됐다.
이 변호사는 "그날 오진승 선생의 개인번호로 여성이 연락을 했다. 내용은 '방패인 줄 알고 다가갔더니 칼이었네요'였다. 문자 내용도 그렇지만 어디에도 오픈되지 않은 개인번호를 알아냈던 것"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성의 스토킹은 이전부터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은 오 씨에게 편지, 메시지, DM(다이렉트 메시지) 등을 지속적으로 보내왔고, 오 씨는 대응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변호사는 "영상으로 확인된 건 세 번의 침입이지만 더 했었다고 충분히 추정되는 상황"이라며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면 어떤 범죄로 나갔을지 모르는 거다. 그래서 오 씨는 불안에 떨며 삼단봉을 가지고 다닌다"고 전했다.
이어 "이미 병원 관계자들도 여성분을 많이 목격했다고 하더라. 충분히 처벌은 가능할 것 같은데 현재는 스토킹에 대해 경범죄 처벌 법만이 적용될 것이다. 10만 원 이하의 벌금인데 너무 경미하다"고 지적했다.
다행인 부분은 건조물 침입으로 형사 처벌이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처벌 수위는 높지 않을 것이라고 이 변호사는 예견했다.
스토킹 처벌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10월 21일부터 시행된다. 이 변호사는 "스토킹 피해는 많았지만 경미하게 처벌되는 부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법률까지 정비되기에 이르렀다"며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이 강화된다"고 강조했다.
오 씨는 해당 여성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고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