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메운 '역사의 공백'…진·한 교체기 권력투쟁 생생히 되살리다

입력 2021-08-19 18:06
수정 2021-08-20 02:16

사전에서는 역사를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역사에는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이 빠짐없이 기록돼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어떤 역사든 완벽한 역사는 없다. 모든 역사에는 공백과 간극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공자의 《춘추》를 읽어보면 마치 메모의 나열과 같은 짧은 기록에 짙은 곤혹감을 느끼게 된다. 앞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사건 사이에는 기록보다 더 광활한 역사의 공백이 존재한다. 조금 후대에 《좌전》이 나와 《춘추》를 보충하고 나서야 《춘추》에 기록된 사실(史實)의 맥락을 이을 수 있게 되었고, 한나라 사마천은 또 《좌전》을 바탕으로 《사기》를 저술해 춘추시대의 역사를 더욱 자세하고 감동적으로 묘사했다.

사마천은 공자보다 400여 년 이후에 태어났으므로 그가 본 춘추시대 사료가 공자가 본 것에 비해 훨씬 적었겠지만, 그는 역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중국 전역을 편력하며 역사 현장을 확인하고, 민간 전설을 듣고, 흩어진 역사 기록을 채집하여 명저 《사기》를 썼다.

《진붕(秦崩》과 《초망(楚亡)》의 저자인 리카이위안 일본 슈지쓰대 교수는 바로 역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사마천의 노력에 주목한다. 그는 역사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사마천과 같은 방법에다 문학적 상상력을 보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학과 사학은 존재 양식이 다르지만, 사람의 무늬(人文)를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바탕이 같으므로, 이 두 분야는 옛날부터 서로 갈마들며 엇섞이기 일쑤였다. 사마천의 《사기》는 역사임에도 짙은 문학적 향기로 불후의 생명을 얻었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문학임에도 역사의 진실을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대대로 이어지는 유구한 독서물이 되었다. 리카이위안도 문학과 사학을 융합한 《사기》, 《삼국지연의》 같은 글쓰기 방식을 지향한다.

리카이위안은 문학과 사학의 회통을 추구하지만, 특히 사마천을 모범으로 삼는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역사학자임에 틀림없다. 그는 역사학자로서 역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마천의 경로를 그대로 따라, 문학적 상상력, 현지답사, 사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방법을 모두 동원한다. 그가 주로 다루는 역사는 진·한 교체기다. 그는 진나라에 처음 반기를 들고 장초를 세운 진승, 그 뒤를 이은 서초 패왕 항우, 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이 모두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사람들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당시 역사는 초·한뿐만 아니라 전국시대 각국이 재건되어 다시 한나라로 통합되는 포스트 전국시대라고 정의한다. 이 때문에 기존의 단선적인 역사는 리카이위안의 손끝에서 입체적인 다양성을 회복한다. 진시황, 이사, 조고, 몽염, 부소, 호해 등이 벌이는 권력투쟁도 우리의 눈앞에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또 진나라 마지막 임금 자영(子)이 진2세 호해의 조카가 아니라 진시황의 아우인 성교(成)의 아들 영()임을 밝혀낸 점, 항우의 숙부 항량에 의해 초나라 마지막 왕으로 추대된 창평군 웅계(熊啓)가 진시황의 부친인 장양왕의 고종사촌임을 증명한 점 등도 근거 있는 상상임을 보여준다.

아울러 리카이위안은 현지답사를 통해 항우가 솥을 깨뜨리고 배를 침몰시킨 파부침주(破釜沈舟)의 현장이 백마진 북쪽의 장하(河)가 아니라 평원진 서쪽의 장하임을 확인했고, 항우가 3만의 정예병으로 유방의 60만 대군을 격파한 경로와 한신이 배수진을 치고 조나라 군사를 대파한 전장도 새롭게 밝혀냈다.

진·한 교체기는 우리에게 《초한지》의 시대로 잘 알려져 있다. 리카이위안의 《진붕》과 《초망》은 역사적 사실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한 새로운 《초한지》세트라고 할 만하다. 리카이위안의 역사 공백 메우기는 궁극적으로 현실을 비춰보는 거울로서의 역사에 중점을 둔다.

김영문 < 인문학 연구서재 청청재(靑靑齋)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