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 한 그릇에 9만8000원. 지난달 서울 역삼동 조선팰리스호텔이 출시한 ‘샤인머스캣 빙수’ 가격이다. 호텔업계에서도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비싼데 얼마나 팔리겠느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4만~6만원대 기존 호텔 고급 빙수의 두 배에 가까운 가격은 무리라고 본 것이다. 한 달 뒤, 분위기는 바뀌었다. 이 고급 빙수를 맛보려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면서다. 하루 20그릇을 한정 판매하는데 주말엔 연일 매진이다. “비싸서 부담이어도 한 번쯤 먹어보고 싶다며 찾는 겁니다. 고급 빙수의 가치를 알아보고 즐기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어요.” 고급 재료로 특별하게조선팰리스호텔의 샤인머스캣 빙수 한 그릇엔 국내산 샤인머스캣 다섯 송이가 들어간다. 당도가 적당한 샤인머스캣 네 송이는 착즙해 얼린 뒤 슬러시 형태로 곱게 갈아낸다. 나머지 한 송이로는 얼음 위를 장식한다. 알알이 푸릇한 샤인머스캣 특유의 싱그러움과 청량감이 입안으로 퍼진다. 호텔 관계자는 “고급 품종 과일을 사용하다 보니 가격대가 높다”며 “고급스러우면서도 특별한 빙수로 기분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더 새롭고 특별한 빙수를 만드는 것은 호텔업계의 공통 고민이다.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은 올해 흥인지문을 형상화한 ‘동대문 흑임자 팥빙수’(5만4000원)를 선보였다. 소복한 우유 얼음에 고소한 풍미를 담은 흑임자 무스, 수제 단팥을 층층이 쌓았다.
이재길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 총주방장(사진)은 “빙수 트렌드는 해마다 바뀌기 때문에 계속 연구하고 실험한다”며 “올해는 한국적 미(美)에 건강한 단맛을 추구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장식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 고급 빙수도 있다. 파크하얏트 서울의 ‘보타닉 망고 빙수’(5만원)는 햇살 좋은 날 공원 풍경을 빙수 그릇에 옮겨 놓은 느낌이다. 호텔 24층 라운지에서 시내 경치를 보며 분위기를 내기에 좋다. 잔디를 연상시키는 얼음은 새싹보리를 곱게 갈아 만들었다. 구수하면서도 산뜻한 맛이 난다. 밀싹과 비올라 꽃잎 위로 망고 조각을 올려 조화를 이뤘다. 월악산 직송 유기농 벌집 꿀에 금박을 입힌 ‘허니 골드빙수’(5만4000원)도 인기 메뉴다. 이곳에선 ‘빙수 콤비네이션’(7만3000원)으로 주문하면 빙수 두 종류를 드라이아이스 장식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수박 과즙으로 얼린 얼음을 산처럼 쌓아 올린 ‘수박 빙수’는 요즘 웨스틴조선 서울의 대표 디저트다. 가격은 3만8000원. 이곳은 주말에 가면 20~30분 기다려야 한다. 당도와 신선도가 높은 수박을 골라 넣어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두드러진다. 곳곳에 박힌 수박씨 모양의 초콜릿도 특색 있다. 더 건강하게…영양 간식‘빙수는 달고 차서 몸에 안 좋다’는 것은 옛말이다. 건강에 좋은 재료로 만든 ‘영양 간식’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올해 비건(채식) 빙수 ‘스위트 비건빙수’를 출시했다. 국내 호텔업계에서 비건 빙수는 이번이 처음이다. 2인용은 4만5000원, 1인용은 2만7000원이다.
이 빙수는 우유 대신 아몬드밀크로 얼음을 만들었다. 아몬드밀크는 아몬드를 물에 불린 뒤 물과 함께 믹서기에 갈아 만드는 식물성 대체우유다. 우유보다 칼로리가 낮고, 칼슘·식이섬유·단백질 함량은 높다. 호텔 관계자는 “우유 소화 효소가 부족해 유당불내증이 있는 이들이 섭취해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급 빙수의 계절은 다음달에도 이어진다. 파크하얏트 서울 관계자는 “무더위가 끝나도 고급 빙수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주요 호텔 대부분이 다음달 또는 10월 초까지 고급 빙수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지은/선한결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