잰더 쇼플리(28·미국)는 2020 도쿄올림픽 골프 남자부 금메달리스트다. 그는 메달 주인이 자신인데 좀처럼 메달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장난스레 투덜댔다. 그의 아버지인 스테판 쇼플리가 그의 메달을 꼭 쥔 채 도통 돌려줄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1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저지시티의 리버티내셔널GC(파71·7410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오프 1차전 노던트러스트오픈 공식 기자회견에서 그는 “올림픽과 관련한 언론 일정 등을 소화할 때 잠시 메달을 가져가는데, 촬영이 끝나자마자 아버지로부터 메달을 돌려달라는 전화를 받는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금메달을) 지금도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다. 아버지에게서 메달을 떼어놓을 방법이 없다”고 미소지었다.
잰더는 이달 초 일본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CC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골프 남자부에서 최종합계 18언더파 266타를 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잰더의 메달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건 스테판이었다. 독일계 이민자인 스테판은 원래 독일에서 서울올림픽 10종 경기 출전을 목표로 뛰다가 1986년 음주운전 차량과 충돌하면서 여섯 번의 수술 끝에 왼눈 시력을 잃고 꿈을 접어야 했다. 유명 육상 선수였던 스테판의 할아버지 리하르트 역시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준비하다가 대회 직전 부상으로 출전이 무산됐다.
스테판은 잰더의 스윙 코치로 일하면서 아들을 세계 최정상급 골퍼로 키웠다. 세계랭킹 4위인 잰더는 PGA투어에서 4승을 수확한 미국 골프의 현재이자 미래로 불린다. 결국 4대에 걸친 꿈이 잰더를 통해 이뤄졌다. 금메달 획득 당시 잰더가 “이 메달은 나의 조국(미국)을 위한 것이자 내 가족, 특히 아버지를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배경이다. 그는 “아버지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샌디에이고 시내를 돌아다니게 하고 싶다”고도 했다.
아들의 인터뷰 내용을 접했는지, 스테판은 이날 잰더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사진(사진)을 올렸다. 스테판은 “아마도 이것(금메달)만큼은 평생 아들에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다”고 적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