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입법예고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의 내용이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이 고용노동부 주최 토론회에서 쏟아져나왔다. 이 법이 보완 입법을 거치지 않고 내년 1월 예정대로 시행되면 기업들이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반복할 것이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고용부는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중대재해법 입법예고 기간 중 노사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토론회 주제는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날 토론회에선 노사를 불문하고 시행령 규정의 모호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선 경영계를 중심으로 중대재해처벌법상 형사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시원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기업의 조직과 업무 분장 형태가 다양해 조직별로 각각 대표이사를 두는 경우도 많다”며 “누가 경영책임자인지 수사기관과 법원이 판단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가 하반기 내놓을 예정인 법 시행 가이드라인이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회의적인 의견도 내놨다. 이 변호사는 “좀 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다지만 고용부가 법원의 판단까지 예상하기는 어려워 가이드라인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도 “시행령에서 경영책임자의 의무인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에 대해 ‘충실하게 수행’ ‘적정한 예산’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것만 보면 기업들이 무엇을 지켜야 처벌을 면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감독기관의 자의적인 법 집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법 시행에 대비해 준비할 기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내년 1월 시행까지 시일이 촉박해 중소기업은 사실상 준비가 불가능하다”며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점검을 받으라지만 192개에 불과한 전문기관이 5만 개 넘는 사업장을 다 소화할 수 없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규정이 산업 현장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시행령안 8조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영책임자 등에게 안전교육 수강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수하지 못할 경우 과태료를 물리도록 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사업주에게 교육을 강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 역시 이 법에 불만을 나타냈다. 김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중대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 중지 등 대응절차를 마련하라는 규정이 있는데 급박한 위험의 경우 고용부가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크다”며 모호한 규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