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 단속’에 나선 뒤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 지형이 바뀌고 있다. 게임·핀테크·전자상거래 분야는 돈줄이 말랐지만 반도체기업엔 돈이 몰렸다.
16일 시장조사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벤처캐피털(VC)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89억달러(약 10조4000억원)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규모다. 직전 분기보다 446% 급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회사 비야디(BYD)의 자회사 BYD반도체는 올해 5월 시리즈A 투자를 통해 2억9300만달러를 조달했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자급화를 위한 육성책을 발표한 뒤 관련 회사들이 반사이익을 봤다. 중국은 2025년까지 자국에서 소비되는 반도체의 70%를 자체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30%대인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투입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업도 수혜를 봤다. 정부가 투자를 독려하면서다. 자율주행자동차 스타트업 위라이드는 올해 6월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로부터 3억1000만달러를 조달했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게이브칼드래고노믹스의 댄 왕 애널리스트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분야는 반도체, 항공, 생명공학”이라며 “시진핑 주석은 기술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디지털 상품보다는 제조 산업을 육성해왔다”고 했다.
정부가 규제 폭탄을 쏟아붓는 핀테크, 전자상거래 기업은 울상이다. 핀테크 기업에 대한 VC 투자는 직전 분기보다 36% 줄어든 3억6000만달러였다. 전자상거래 기업도 54% 감소한 40억달러의 투자를 받는 데 그쳤다. 게임 분야는 96% 급감해 1억1200만달러밖에 조달하지 못했다.
정부 규제는 분야별 투자 거래 건수에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데이터기업 리피니티브는 올해 2분기 중국 반도체 분야 투자 거래가 74건이었던 데 비해 전자상거래 분야는 42건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인력 시장도 요동쳤다. 중국 정부의 규제가 지속되자 전직 중국 관료를 스카우트하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감독기관에서 일하던 공무원을 채용하면 규제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가늠할 수 있어서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융시장을 감시하거나 상무부 등에서 정보를 관리하던 전직 관료의 몸값은 공무원 평균 연봉의 60배인 50만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전직 관료도 늘고 있다. 전직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대변인은 작년에 구오센증권 사장으로 임명됐다. 전자상거래업체 징둥닷컴의 한 부사장은 상무부 관료 출신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