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고위 임원들이 이달 예정했던 한국GM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한국GM 노사가 마련한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이 노조 찬반 투표에서 부결된 데 따른 것이다. GM의 선물 보따리를 기대했던 노조 스스로 미래 먹거리를 걷어찼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스티븐 키퍼 GM 수석부사장 등 최고경영진은 이달 한국GM 방문 일정을 잡았다가 최근 취소했다. 지난달 26~27일 한국GM 임금협상 잠정합의안 노조 찬반 투표에서 절반이 넘는 51.15%(3441명)가 반대표를 던져 부결된 데 따른 것이다.
부결된 합의안은 기본급 월 3만원 인상, 일시·격려금 450만원 지급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노조가 요구한 기본급 월 9만9000원 인상, 통상임금의 150% 성과급 지급, 격려금 400만원 지급 등에 크게 미치지 못해 내부 반발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결 이후 지난 12일 다시 열린 단체교섭에서 노조는 키퍼 수석부사장 등의 방문 취소 이유를 따졌다. 사측은 “합의안이 부결됐기 때문”이라며 “임금교섭 중 방문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GM 본사 최고경영진의 방문은 중요하다”며 “임금협상이 먼저 타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퍼 수석부사장의 방한은 지난 6월 미국 디트로이트 본사에서 한국GM 노사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약속이다. 키퍼 수석부사장은 이 자리에서 “경영진은 2030년 한국의 비전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며 “분명한 비전이 있어야 하고 미래가 담보돼야 하는데 노사협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국GM 노사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키퍼 수석부사장의 방한이 한국GM에 대한 차량용 반도체 공급과 전기차 생산 배정 등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GM은 노사관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매년 파업을 반복하는 노조가 한국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GM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지난달엔 미국 시장에서 일본 도요타에 역전당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GM은 전기차 업체로 변신해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35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중 일부는 미국 외 일부 GM 공장에도 배정될 가능성이 크다. 노조 파업으로 매년 공장 문을 닫는 한국GM 몫도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