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가 제휴처라니까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소비자가 포인트를 현금으로 결제하면 제휴처에서 돈을 쓸 때 20% 할인을 받게 해 주고, 할인에 들어가는 비용은 제휴처와 나누지 않고 전액 부담하는 서비스 ‘머지포인트’. 제휴처였던 A 유통업체 관계자는 이곳에 입점할 때 의구심을 품었다고 했다. 어떻게 수익을 내는 업체인지 가늠이 안 됐다. 마케팅팀장을 불러 검증된 서비스냐 물었더니 “경쟁사 B사가 쓰고 있고 소비자 반응이 좋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전자금융업 사업자 미등록 논란에 서비스를 기습 축소하고 포인트 판매를 중단한 ‘머지포인트 사태’의 파장이 크다. 환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소비자들의 원망은 제휴처와 e커머스로 향하고 있다. 발행금액 1000억원, 사용자 수 100만명에 이를 만큼 서비스가 성장한 건 대형 유통·식품기업들이 ‘보증’을 해준 덕분이다.
머지포인트 입점업체는 CU·GS25·세븐일레븐 등 편의점과 이마트 등 대형마트, 파리바게트·빕스 등 식음료 프랜차이즈까지 대형 회사들이 망라돼 있다. 티몬, 위메프 등 e커머스는 수시로 할인행사를 열어 머지포인트를 공격적으로 팔았다.
유통·식품기업들은 검증에 도가 튼 곳들이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은 최상급 한우, 싱싱한 채소를 찾아 전국을 뒤지고 식품업체는 소비자의 입에 들어갈 먹거리를 꼼꼼히 살핀다. 그런 기업들이 왜 사업자 등록 문제가 있고 수익모델도 불분명한 포인트 업체에 선뜻 들어갔을까.
‘경쟁사가 이미 도입했다’는 A사의 해명에 답이 있다. 유통·식품업계는 요즘 신기술 경쟁에 혈안이 돼 있다. 쿠팡 등 e커머스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 의식주 스타트업의 출현 등으로 유통·식품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서다. 새로운 서비스를 먼저 도입하는 ‘선구자’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이 업계에 팽배하다.
속도가 관건이 되자 검증은 뒤로 밀렸다. 전에 없던 서비스가 혁신인지, 규제의 빈틈을 이용했는지, 알고 보니 위법인지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시간도 걸렸다. 한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요즘 IT 스타트업이 ‘편의점·마트 중 한 곳과 협업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며 “서비스가 의심쩍다고 반려했다가 경쟁사가 도입해 성공하면 마케팅팀은 풍비박산이 난다”고 토로했다. 격변하는 유통환경에서 경쟁사에 뒤처질 수 없었던 기업들의 불안감이 검증에 빈틈을 만든 셈이다.
머지포인트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향후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유사 업체가 이 빈틈을 파고들 때 유통·식품업계가 ‘선구자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까.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싱싱한 채소와 과일 뿐 아니라 제휴 서비스도 기업을 대표하는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먹거리만큼 꼼꼼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