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vs 카카오 '대리운전 빅뱅'…모빌리티 주도권 경쟁 격화

입력 2021-08-16 07:30
대리운전 시장을 둘러싼 SK텔레콤과 카카오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플랫폼 구축은 기본에다 인수합병(M&A)과 서비스 확대 등에 나서고 있다. 양사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까닭은 대리운전 업계가 거대한 시장 규모에 비해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다. 먼저 주도권을 잡아야 시장점유율을 선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영세한 업체들이 많이 포진한 만큼 '제 2의 타다사태'로 번질 우려도 있다. SK텔레콤과 카카오는 기존 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돌파하려고 하지만, 생존권을 내세운 기존 업계의 반발을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티맵모빌리티 '굿서비스', '버틀러'와 동맹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 자회사 티맵모빌리티는 최근 법인대리 서비스회사 '굿서비스'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이 회사는 임원·개인사업자 대표들에게 최상위 운전대행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기존 B2C(기업-소비자간 거래) 대리운전과 달리 VIP 전용서비스에 초점을 맞췄다.

티맵모빌리티는 시간제 수행기사 서비스 '모시러'를 운영하는 '버틀러'와도 '프리미엄 운전대행 서비스 시장 창출·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모시러는 차량을 소유한 이용객의 운전을 대행하는 프리미엄 시간제 수행기사 서비스다. 특급호텔 리무진·기업 바이어 등을 상대로한 VIP 의전, 이동과 보호가 동시에 필요한 노약자, 임산부 대리 운전 서비스 모델을 갖고 있다.

티맵모빌리티는 연이어 체결한 제휴를 통해 기존 대리운전과 차별화된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포부다. 의료 분야에서 건강검진이나 간단한 수술 후 자가 운전이 어려운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운전대행 서비스부터 고령층 케어, 골프장 운전동행, 차량 정비대행까지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이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티맵모빌리티는 지난달 대리운전 호출 서비스 플랫폼인 '티맵 안심대리'를 선보였다. 별도 어플리케이션(앱) 설치나 회원가입 없이 티맵 내비게이션에서 대리기사를 바로 호출할 수 있어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티맵모빌리티는 안심대리를 통해 카카오와 직접적인 점유율 경쟁을 벌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카카오T 앱이 2800만명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리운전과 수요층이 다른 택시 중개, 가맹택시 이용자 위주인 반면, 티맵은 국내 최대 규모인 1900만명의 내비게이션 이용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티맵모빌리티는 이용자 유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우선 신규 가입 대리기사 혜택을 키워 공급을 늘리고 있다. 요금 20%의 중개 수수료를 첫 3개월간 면제하고 대리기사 업무용 공유 킥보드 요금도 3개월간 50% 할인한다. 대리운전 중 사고 발생 시 보장해주는 최대 보험 금액은 카카오와 타다(대물 1억원·자차 3000만원) 대비 약 2배(대물 2억원·자차 8000만원)로 높였다.카카오모빌리티, '콜마너'에 이어 '1577'까지 손에 넣어 지난해 대리운전 배차프로그램 업체 '콜마너'를 인수하고 본격 시장에 진출한 카카오모빌리티는 티맵모빌리티의 도전이 거세지자 점유율 확장에 더 속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자회사 'CMNP'는 1577 대리운전을 운영하는 코리아드라이브와 손잡고 합작법인 '케이드라이브'를 설립했다. 코리아드라이브는 과거 개그맨 이수근을 모델로 기용해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라는 광고 문구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업체다. 현재 전화콜 대리기사 시장 점유율 1위다.

케이드라이브는 코리아드라이브로부터 1577 전화콜 운영 서비스를 이관받아 카카오T 플랫폼에서 통합 운영한다. 케이드라이브 대표는 이창민 카카오모빌리티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맡는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신설 법인의 정확한 지분율을 밝히진 않았다.

카카오모빌리티는 2016년 5월 대리운전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택시호출 시장과는 달리 쉽사리 점유율 확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각종 이동수단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추진하는 카카오모빌리티로선 대리운전 시장을 포기하는 대신 앱 호출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전화콜로 외연을 확장키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1577과 합작해 대리시장 장악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대리운전을 중심으로 이동수단 전반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민수 카카오 대표는 지난 6일 올 2분기 실적발표 이후 이어진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우리는 대리운전 뿐만 아니라 신사업 도입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주차서비스를 비롯해 시외버스, 기차, 셔틀버스에 이어 항공 관련 서비스도 론칭했다"며 "하반기에는 렌트카와 공유킥보드를 신규 서비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동수단 간 시너지를 유발시켜 연계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동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두 업체가 대리운전 시장에 사활 건 이유 두 업체가 대리운전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 대리운전 시장은 연간 3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종사하는 대리운전 기사 수만 약 16만명 내외다. 반면 수조 원의 돈이 오가지만 제대로 된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했다. 양사는 자신들의 강점을 내세워 대리운전 시장을 정식으로 '플랫폼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대리운전 시장이 체계화되지 못한 이유는 이용객 특성상 앱보다 전화 서비스를 사용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서다. 대리운전 시장에서 앱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여전히 80%의 이용자는 '전화 콜' 방식을 선호하는 상황. 대리업계 한 관계자는 "취객들이 앱에 접속해 버튼을 하나하나 눌러가며 대리기사를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다"며 "평소 기억하고 있던 번호로 호출하거나 식당 종업원에게 대리를 불러달라고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대리운전은 택시 중개와 달리 직접 중개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수익성이 큰 사업으로 평가된다. 삼성증권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영향에도 지난해 카카오모빌리티의 매출 비중은 점유율 80%대의 택시 중개보다 10%대의 대리운전 중개 사업이 더 높았다.

대리운전은 또 교통수단 외 자가용 차량의 이동 데이터까지 얻을 수 있어 양사로서는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하다. 모든 이동수단을 하나의 앱으로 중개하는 '서비스형 모빌리티'(MaaS) 플랫폼 완성을 노리는 카카오와 티맵 입장에선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영세업체 반발은 공통 숙제 하지만 두 업체 모두 영세업체 반발을 잠재워야 한다는 점은 숙제로 꼽힌다. 기존 대리운전 업체들은 양사의 전화콜 대리운전 시장 진출을 "대기업의 영세업체 죽이기"로 규정했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지분 인수와 프로모션 등을 통해 중소사업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리운전 중소업체 모임인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는 지난 1일 입장문을 내고 △대기업의 플랫폼을 제외한 전화콜 시장 진출 포기·기존 전화콜 시장 인수와 지분참여 확장 금지 △자본력을 앞세운 프로모션 행위 금지 △대기업 콜을 먼저 처리하게 하는 정책 금지 등을 강력 촉구했다.

장유진 대리운전연합 회장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엽합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대리운전 시장은 약 3000개의 중소업체로 구성돼 있다. 카카오가 진입하기 전인 2016년 전만 해도 약 6000개의 대리운전 회사들이 있었는데 이후 50%가 사라졌다"며 "카카오와 SKT가 그나마 남아있던 전화콜 시장마저 빼앗으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은 특성상 '제로섬 게임' 양상으로 갈 가능성이 높은데, 이용가격 인하 등의 정책을 내세우다 보면 결국 영세업체나 대리기사들이 피해를 본다"며 "카카오의 문어발식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다양한 형태의 제동을 걸 수도 있다. 현 상황에서는 차별화 전략을 내세운 티맵모빌리티가 카카오에 비해 국민 저항을 덜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