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사물놀이 장세

입력 2021-08-12 17:34
수정 2021-08-23 09:58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대다수 개인투자자들에게 주식시장은 일종의 ‘돈 놓고 돈 먹기’라고 해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주식을 매수하는 순간부터 계좌에는 바로 파란불(손실) 혹은 빨간불(이익)이 켜진다. 짜릿하기도 하지만 매시간 매초, 주가 움직임에 온통 정신을 뺏기다 보면 일상이 엉망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환호와 좌절이 순식간에 교차하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고 온갖 에피소드가 탄생한다. 증시 주변에 수많은 유행어가 생겨나는 이유다. 국내 혹은 해외 주식을 쓸어담는 개인을 가리키는 ‘동학개미’나 ‘서학개미’는 이미 철 지난 유행어가 됐고, 공모주 열풍을 타고 등장한 ‘따상’(상장 당일 시초가가 공모가의 두 배가 된 뒤 상한가에 도달)은 다소 시들해졌지만 아직은 그래도 현역(?)에 속한다.

주가 상승세가 가파른 주도주들을 부르는 약칭도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자동차 화학 정유사 주식을 일컫는 ‘차화정’은 10여 년 전인 2009~2011년 전성기를 보냈다. 지난해 증시 슈퍼스타 노릇을 한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는 플랫폼·IT 업종과 함께 여전히 비교적 강세다. 미국 증시의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 혹은 ‘MAGA’(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애플)도 그런대로 아직까지는 선전하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최근 약 3개월간 3200대에서 지루한 횡보를 계속하자 ‘사물놀이 장세’라는 용어가 새로 등장했다. ‘사면 물리고 놀면 이긴다’의 줄임말로, 주가가 박스권에서 움직일 때는 섣불리 매수하기보다는 추세가 결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상책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말이 쉽지, 주식투자에 한번 발을 들인 사람에게 ‘무포’(無포지션: 주식이 없는 상태)만큼 힘든 시기도 없다. 남들이 가진 주식은 다 오르는 것 같은데 가만히 있으면 나만 왠지 손해보는 것 같은 ‘FOMO’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워서다.

추세가 형성되면 그때 들어가라고 하지만 이 역시 생각만큼 쉽지 않다. 언제 추세가 잡히는지 알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뒤늦게 추세를 좇아 추격매수를 하면 대부분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이 따라온다. 주가 조정을 버티고 버티다 손절하면 약 올리듯 다시 오르는 게 주가다. 주식투자도 훈수는 쉽지만 실전은 어렵다. 그래서 더 주식을 끊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