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집값 고점론'에도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로 증가했다. 7월 가계대출은 9조7000억원 증가하면서 역대 7월 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11일 발표한 '7월중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은 9조7000억원 증가한 1040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4년 관련 통계 속보치 작성 이후 7월 기준으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주택담보대출과 기타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한 영향이다. 주택담보대출과 기타대출 모두 7월 기준으로 두 번째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주택담보대출은 6조1000억원 늘면서 758조4000억원의 잔액을 기록했다. 주택매매 및 전세거래 관련 자금수요가 늘었고, 집단대출 취급도 지속되면서 증가규모가 확대됐다.
박성진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주담대는 주택 매매거래와 통상 2~3개월 시차를 두고 후행하고, 전세자금도 계약체결 확정일자를 거쳐 1~2개월 후행해서 발생한다"며 "7월 거래도 영향을 줬겠지만, 그 이전에 나타난 대출 거래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집값 고점론을 펼쳤지만, 주택시장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를 시작으로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은 "집값은 지금 오를 만큼 올랐다. 추격 매수를 자제해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부터 다섯 차례나 집값이 고점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최근에도 홍 부총리는 "부동산 시장 가격 조정이 시장의 예측보다 큰 폭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며"지금 아파트 실질가격, 주택구입 부담지수,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 등 지표들이 최고수준에 근접했거나 이미 넘어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전체로도 7월 가계대출은 통계치 속보 작성 이후 최대 규모인 것으로 파악된다. 박성진 차장은 "2금융권 가계대출도 높은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는데, 상당 부분은 은행권 규제 강화로 제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거나 신용도가 낮은 가계대출 수요가 일부 비은행권에서 대출 증가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7월 기타대출은 3조6000억원이 증가했다. 7월엔 SD바이오센서와 카카오뱅크 HK이노엔의 공모주 청약이 있었다. SD바이오센서와 카카오뱅크의 청약증거금은 지난달 반환됐다. 29조원이 몰린 HK이노엔의 청약증거금은 지난 3일 반환된 만큼, 7월 가계대출 증가액으로 반영됐다.
기업대출도 역대 7월중 '최대'…"가계대출 증가세 둔화되기 어려워"기업대출 증가 규모도 상당 폭 확대됐다. 지난달 말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1033조5000억원으로 6월 말보다 11조3000억원이나 늘었다. 이는 2009년 통계 속보치 작성 이후 7월 증가액 기준으로 최대 수준이다.
중소기업대출과 개인사업자대출의 증가폭도 7월 기준으로 가장 컸다. 중소기업 대출은 9조1000억원이나 늘었고, 개인사업자 대출도 4조2000억원 증가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은행 및 정책금융기관의 금융 지원, 부가가치세 납부 관련 자금수요 등으로 증가폭이 확대됐다. 또 7월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대면 서비스업 중심으로 매출이 하락해 대출 증가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기업 대출은 지난달 2조3000억원 증가했다. 분기말 일시상환분 재취급 등으로 6월엔 감소했지만, 다시 증가세로 전환했다.
은행 예금을 비롯한 수신 잔액은 7월 말 대폭 증가폭이 축소됐다. 2조5000억원 증가에 그치면서 잔액은 2032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6월말 결제성자금 확보 등을 위한 기업예금 확대와 같은 계절요인이 소멸하고, 부가가치세 납부를 위한 기업예금 인출 등이 적용된 영향이다. 정기예금은 가계의 자금 인출 등으로 1조3000억원 증가하면서 6월(3조2000억원)보다 증가 폭이 축소됐다.
당분간 가계대출은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 차장은 "7월부터 DSR 규제 등 정부에서 가계대출 총량관리에 나서고 있어서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주택매매나 전세자금 수요, 주식 등 위험자산 수요와 코로나 관련된 생활자금 수요 등 대출 수요가 상당히 큰 만큼, 가계대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