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을 맞아 TV에 골프 관련 예능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골프가 보이면 채널 돌리기 바빴던 내가 골프 예능을 보게 된 건 순전히 '미스터 트롯' 원픽이었던 장민호 때문이다.
내 기억 속 골프라는 운동은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맨발샷을 날리던 모습으로 각인돼 있다. 연장전 끝 대회에서 우승을 한 박세리가 양말 속 하얀 발을 드러내고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할 때 양희은의 '상록수'가 울려 퍼지는 장면은 골프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봤을 레전드 영상이지 않은가.
아무튼 멋진 샷을 성공 시켜 우승을 하며 환호하는 하이라이트만 봐온 내게 골프 예능 속 스타들의 어설픈 샷은 골프에 대해 색다른 느낌을 줬다.
좌충우돌 헤저드에 공을 빠트리고 마음대로 공이 날아가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니 이전과 다르게 골프에 친근감이 느껴졌다.
속이 뻥 뚫리게 날아가는 샷을 보면 내 가슴도 뚫리는 듯하고 초록색 필드는 또 어찌나 예쁜지.
골프라는 운동에 급관심이 생겨난 터에 회사 바로 옆 건물에 실내골프연습장이 생긴 걸 알게 됐다. 거리두기로 인해 약속도 줄어든 지금이 적기다 싶었다.
◆ 골프 연습장 등록 첫 주 '이렇게 땀이 많이 나는 운동인가요'
회사 후배와 의기투합해 골프 연습장을 찾았다. 점심시간에는 연습장 비용이 저녁보다 저렴하다는 점도 반가웠다.
그런데 막상 연습장에 가서 문의한 후 내가 배우고 싶다고 언제든 바로 등록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최근 20~30대에도 골프 열풍이 불면서 레슨 대기자가 어마어마했던 것.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지 열흘쯤 뒤 반가운 연락이 왔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12시에 레슨이 가능하다는 프로쌤의 문자였다.
얼마나 하게 될지 모르는데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골프채 등은 준비할 필요가 없다. 연습장에서는 골프채와 티셔츠까지 대여해주고 있었으므로 맨몸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골프를 시작한 초보들이 제일 먼저 만나는 클럽은 7번아이언이다. 많은 클럽 중 제일 다루기 쉬운 클럽이며 중심에 있는 골프채라고 한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타석에 서서 먼저 그립에 대해 배운다.
간단해 보이지만 왼손으로 채를 돌려 감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건 뒤 엄지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며 잡는 방법이 낯설었다.
이걸 어떻게 기억하지 싶어 '잠깐만요'를 외치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어찌나 골프채를 꽉 잡았던지 연습이 끝난 후에도 손가락 마디마디가 얼얼했다.
주위에서 얘기 들어보면 골프 연습장에 처음 가면 두 달이고 석 달이고 이른바 '똑딱이'만 치며 연습해야 해서 시작은 꽤 지루할 거라고들 했다.
똑딱이는 스윙으로 가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동작으로 알려져 있는데 몸 전체를 고정한 상태에서 팔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마치 시계추를 연상한다 하여 ‘똑딱이’라 불린다. 보기에는 쉬운 동작처럼 보이지만 골프 입문자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포기하는 비율도 높다고.
이때 프로께서 가장 강조한 내용은 겨드랑이가 떨어지지 않게 신경쓰라는 점이다.
팔을 일자로 쭉 펼친 상태로 어깨를 회전시키면서 손과 양 어깨가 역삼각형 모양이 되게 한 후 흐트러지지 않게 스윙을 했다. 이때 왼쪽 팔과 겨드랑이가 멀어지지 않게 주의하려고 노력했다.
평소 헬스장 등에서는 해볼 일이 없는 몸통 비틀기를 하면서는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배웠어야 했는데' 생각이 들었다.
특히 겨드랑이에서 왼팔이 떨어지지 말라는 반복된 강습에도 불구하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팔이 겨드랑이에 붙었다고 생각했지만 동작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니 확연히 프로님과는 많이 달랐다.
다시 팔을 붙이는 연습만 수십번.
누가 골프 운동 효과는 별로 없다고 했나. 타석마다 선풍기가 왜 있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등에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에요'라며 프로 쌤이 찍어주신 영상 속 내 모습이 조잡하나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에 뿌듯했다. 그게 화근이었을까(ㅋㅋ). 페이스북에 올린 연습 영상을 본 사장님께서 '골린이 탈출기'를 연재해보는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한 내게 동기는 평소와 같은 긍정마인드로 용기를 준다. "부담감 느껴져서 금방 늘거야."
이 말에 용기를 내 타자를 두드려 본다.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신 사장님 가...감사합니다. 열심히 연습할게요."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