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SK텔레콤과 롯데쇼핑은 11번가 ‘공동 운영’ 계약서에 서명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동상이몽으로 협상은 결렬됐다. 롯데는 경영권을 원했지만, SK 측은 쇼핑을 떼어 낼 생각이 없었다.
약 4년 만에 두 기업 간 밀월이 다시 시작됐다. 신세계그룹이 네이버와의 제휴에 이어 이베이코리아마저 인수하며 ‘합종’을 이루자 2위권 업체들 간 ‘연횡’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품 수 늘려라” 제휴처 찾는 롯데
10일 e커머스(전자상거래)업계에 따르면 11번가와 롯데온의 업무 제휴를 위한 ‘테이블’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 대형마트, 프리미엄아울렛 등을 운영하는 롯데쇼핑이 G마켓, 옥션에 대한 상품 공급을 줄이고, 이를 11번가로 돌리는 것이 골자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은 아니다”면서도 “11번가와 롯데온이 경쟁이 아니라 협업으로 관계를 재정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자체 통합 온라인몰인 롯데온을 제외하면 롯데쇼핑과 가장 관계가 좋은 온라인 채널은 G마켓이었다. 하지만 신세계가 G마켓 등 이베이코리아를 3조44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관계 재설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11번가 관계자는 “대형마트 중에선 롯데마트만 신선식품 코너에 빠져 있었는데 곧 입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희태 롯데쇼핑 부회장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발을 뺀 직후 패션, 뷰티 등 전문몰 강화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롯데온이 e커머스 플랫폼으로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입점 판매상의 숫자를 대폭 늘려 상품 구색을 확대하는 것 외엔 별다른 길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로선 11번가와의 제휴가 유일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11번가에 올라와 있는 상품 수는 약 1억4000만 개로 G마켓 등과 비슷하다. 11번가, 상장 위한 큰 그림 그릴 듯신세계그룹과 네이버처럼 롯데와 SK텔레콤이 지분 교환 등 피를 섞는 혈맹 관계로까지 발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11번가는 4년 전 롯데, 신세계 등과 공동 경영안을 논의하면서 해외 시장 진출까지 계획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SK그룹은 올 4월 베트남 재계 1위인 빈그룹이 운영하는 유통업체인 빈커머스 지분 16.3%를 인수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모바일과 모빌리티를 중심으로 통합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는 SK그룹으로선 11번가가 맡고 있는 쇼핑을 더욱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분을 매개로 한 제휴는 올해 말께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SK텔레콤이 인적분할을 통한 중간 지주회사 설립 등 올 하반기에 마무리해야 할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남아 있어서다.
11번가로선 롯데 외에 홈플러스라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점도 변수다. SK는 그룹 차원에서 신성장동력을 찾아 투자처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사모펀드들과 접촉 빈도가 잦다. 홈플러스의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손잡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이유다.
11번가는 아마존 상품을 자사 플랫폼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당초 이달 서비스 출시를 계획했으나 국내 안전 규정과 관세 등을 감안해 어떤 종류의 상품을 가져올 수 있을지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커머스업계 관계자는 “11번가로선 2023년 상장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된 이후에 상장 미션을 받은 이상호 11번가 대표가 아마존으로부터 지분 투자를 이끌어내고, 롯데 등 국내 제휴 파트너를 찾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