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대표는 내년이면 20년차 펀드매니저가 된다.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장수 펀드매니저다. ‘대표’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좋은 종목을 발굴하기 위해 지금도 1년에 200번씩 기업 탐방을 다닌다. “HMM을 너무 빨리 팔아버린 것 같다”며 머리를 감싸쥐는 모습은 여느 펀드매니저와 다르지 않았다. 사내 펀드매니저들에겐 상사보다는 여전히 좋은 동료로 평가받는다. 매일 주식을 직접 사고팔며 직원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팀워크’는 신 대표 취임 후 3년 만에 국내 독립 운용사 가운데 유일하게 마이다스의 주식 운용 규모(AUM)를 10조원까지 올려놓은 비결로 꼽힌다. ‘홈런 타자 말고 3할 타자가 돼라’펀드매니저들의 롤모델이 된 신 대표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시작했다. 평범한 애널리스트였던 그는 ‘주간추천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증권사들은 매주 추천주를 발표했다. 언론은 어느 증권사의 추천주가 수익률이 좋았는지를 다뤘다. 증권사마다 경쟁이 붙었다.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주간추천주를 떠맡는 것을 꺼렸다. 가욋일인 데다 주 단위로 수익이 날 만한 종목을 고르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마음 한편에 펀드매니저의 꿈을 품고 있던 신 대표는 이를 기회로 삼았다.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산하 동원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던 그는 주간추천주를 자진해서 맡았다. 이를 위해 스몰캡(중소형주) 종목 수백 개를 연구했다. 기업설명회(IR) 일정부터 보호예수 물량 출회 시점까지 종목과 관련한 모든 일정을 놓치지 않았다. 존재감이 없던 증권사 대리가 주간 추천주 2년 연속 수익률 1위에 오르자 자산운용사들의 ‘러브콜’이 시작됐다.
그는 펀드매니저라는 꿈을 위해 2003년 연봉을 2000만원이나 깎이고도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으로 둥지를 옮겼다. 보고서 작성에 몰두해야 하는 애널리스트보다 큰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가 되고 싶었다.
‘홈런 타자가 되지 말자. 대신 3할 타자가 되자.’ 펀드매니저가 된 신 대표는 이를 마음에 새겼다. 단기간에 세 자릿수에 달하는 높은 수익률을 내며 의기양양하던 매니저가 삽시간에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더욱 확고해졌다. 신 대표는 한 종목에 크게 베팅해 당장 큰 수익을 올리기보다 조금씩 꾸준히 수익률을 내는 것을 추구한다. 덩치가 작은 종목이지만 ‘수익이 날 것 같다’고 판단하면 주저하지 않고 샀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스치듯 언급한 종목도 수첩에 빼곡히 적어넣고 빠짐없이 살펴봤다. 그렇게 종목명과 날짜, 수익률로 가득 채워진 그의 수첩은 지금도 분기마다 새로운 수첩으로 교체된다. 애널리스트들이 신 대표와 전화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이유다. 선수 겸 감독이 만든 최정예 팀차곡차곡 쌓은 수익률로 마이다스운용을 성공 궤도로 올려놓은 그는 2018년부터 펀드매니저와 대표를 겸하고 있다. 펀드업계에서 대표가 직접 펀드를 굴리는 건 왕왕 있는 일이지만 신 대표만큼 주목받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대표의 무게감을 견뎌내고 꾸준히 우수한 펀드 수익률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주식 직접 투자 열풍으로 펀드에서 자금이 계속 빠져나간 작년과 올해는 더욱 그렇다. 비결은 꾸준한 공부. 대표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1년에 200번씩은 직접 기업을 찾아 현황을 확인한다.
신 대표의 노력은 수익률로 이어졌다. 신 대표가 2015년부터 운용하고 있는 마이다스책임투자펀드의 최근 5년 수익률은 155.77%에 달한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58.07%)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국내 주식형 펀드들이 나날이 규모가 쪼그라들고 있는 상황에서 마이다스운용의 주식형 공모펀드 규모는 최근 1년간 5700억원에서 1조3500억원으로 불어났다.
그는 자신이 ‘선수 겸 감독’이란 것을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펀드매니저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용사에 악재인 직접 투자 열기 속에선 팀워크가 더욱 중요하다는 게 신 대표의 생각이다. 개인투자자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SNS를 통한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펀드매니저를 위협하고 있다. 신 대표는 운용역들이 집단지성을 모아야만 높은 수익률을 올려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신 대표가 이끄는 마이다스의 팀워크는 ‘펀드 위기’ 속에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신 대표 취임 이후 마이다스의 주식 운용 규모는 7조2240억원에서 10조622억원으로 39.29%가량 늘었다. 전체 운용사 중 8위다. 금융지주나 대기업에 속한 운용사를 제외한 독립계 자산운용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업계에선 펀드 자금 대부분이 상장지수펀드(ETF)에 쏠리는 상황에서 간접 투자를 하는 자산운용사에 돈이 몰리는 건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펀드 어려워도 곧 기회 온다”신 대표는 아직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한국 간접 투자 시장에 기여하는 일이다. 신 대표는 “펀드 고객들에게 많은 수익을 돌려주고 국내 간접 투자 시장 발전에 기여하는 게 개인적 목표”라며 “대표로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독립계 자산운용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가 모두가 주식, 채권, 부동산, 인프라 등 모든 자산군에 신뢰를 갖고 자금을 맡길 수 있는 운용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직접 투자 열기에 젊은 매니저들이 하나둘씩 업계를 떠나고 있지만 반드시 반전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란 믿음도 확고하다. 너도나도 직접 투자에 뛰어들고 있는 과열된 분위기가 지나면 간접 투자 시장이 다시 주목받을 것이란 설명이다."ESG 열풍 예견…마이다스에셋이 착한 투자 정착시킬 것"
'책임투자펀드' 고수익의 비결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의 효자 상품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인 ‘마이다스책임투자펀드’다. 2018년 순자산이 630억원에 불과하던 이 펀드는 현재 6972억원(10일 기준)으로 규모가 열 배 넘게 커졌다. 최근 3년 동안 전체 액티브 주식형 펀드 중 가장 많은 자금이 들어왔다. 해당 기간 수익률은 85.92%다.
이 펀드가 설정된 시점은 2009년이다. 지금이야 ESG 투자가 붐이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한 분야였다. 이 펀드를 2015년부터 운용해온 신진호 대표는 ESG 투자가 주목받을 것으로 생각해 꾸준히 가꿔왔다. ESG 관련 부정적 행위를 하는 기업은 투자수익률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투자펀드는 자체적으로 기업의 ESG 스코어를 매겨 점수가 높은 기업에 투자해왔다. 돈이 되지 않는 펀드라고 방치하지 않은 덕에 ESG라는 커다란 파도를 가장 먼저 탈 수 있었다.
책임투자펀드는 국내 ESG 펀드 중 가장 큰 펀드가 됐다. ESG 대표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로서 신 대표는 수익률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하는 데 욕심을 내지 않는다. 자금 유입에만 집중하면 수익률이 안 좋아지고 이는 곧 펀드 외면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신 대표는 “모처럼 ESG 바람이 불었는데 수익률로 보여주지 못하면 착한 투자가 정착되지 못할 것”이라며 “ESG 투자의 효용을 증명해내는 시기이고, ESG 대표 펀드가 된 책임투자펀드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신진호 대표는
△1970년 서울 출생
△1995년 한양대 교육공학과 졸업
△1996년 한양증권 조사부 기업분석 연구원
△1999년 고려대 재무학 석사
△2000년 동원경제연구소 투자분석실 책임연구원
△2003년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 펀드매니저
△2012년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2018년 6월~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공동대표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