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가석방에 '베팅'…외인·기관들, 삼성전자 쓸어담았다

입력 2021-08-09 08:42
수정 2021-08-09 09:29

삼성전자가 7만원대 박스권에 벗어나 '8만전자'를 탈환했다. 지난 2분기 역대급 실적 달성에도 꿈쩍하지 않던 주가는 이재용 부회장의 8·15 광복절 가석방 심사를 앞두고 들썩이고 있다. 최근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이 삼성전자를 대거 사들이며 이 부회장의 가석방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주(2~6일) 5거래일 동안 2.77% 오른 8만1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 주가는 연초 10만전자를 돌파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주가가 정반대 양상을 보였지만, 지난 주만은 사뭇 다른 분위기로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삼성전자 주가를 끌어올린 건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의 매수세다. 외국인과 기관은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각각 9429억원과 7707억원가량을 사들였다. 반면 개인은 같은 기간 1조7642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시장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가능성이 커지면서 삼성전자의 투자 시계가 다시 돌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을 통해 경영 현장에 복귀하게 되면 삼성전자 입장에선 미뤄둔 대형 투자와 인수·합병(M&A) 등에 속도를 낼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주력 사업인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공개된 미국에 신규 파운드리 공장 건설과 관련해 최종 입지와 관련된 윤곽도 이 부회장의 복귀에 발맞춰 베일을 벗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같은 사건으로 2017년 3월부터 2018년 2월까지 거의 1년간 수감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전체 형량의 절반 이상을 넘겼다.

법무부 예규에 따르면 형기의 60% 이상을 채운 수형자는 가석방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 부회장도 원칙상 가석방이 가능하다. 최근 법조계에선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달 말 열릴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의 대상자 명단에 이 부회장이 포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으나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공식적으로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는 상태다.

증권가에선 외국인과 기관의 순매수를 두고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봤다. 외국인과 기관이 삼성전자를 사들이기 시작한 시점이 언론 등을 통해 관련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라서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 삼성전자에 필요한 것은 파운드리 부문의 개선과 M&A"라며 "그동안 삼성이 잘했다고 할 수 없는 부문에서 의미 있는 성과나 전략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삼성전자 주가에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총수 복귀에 맞춰 삼성전자가 좀처럼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고 있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투자 및 대형 M&A 계획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빅뉴스가 필요하다"면서 "주가가 유의미하게 상승하려면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미국 팹리스 고객사의 추가 확보나 M&A 추진과 같은 드라마틱한 이벤트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연초 장중 사상 최고가(9만6800원)를 경신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여전히 상승여력이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한달간 유진투자증권(10만원), 하이투자증권(9만2000원), 미래에셋증권(10만원) 3곳의 증권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목표주가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한 목표주가는 최소 9만2000원부터 최대 11만5000원에 달한다. 현재 주가인 8만1500원보단 상승여력이 있다는 진단이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생산업체들의 재고가 타이트하고 서버 수요 증가가 지속될 전망이어서 메모리의 상승 사이클은 여전하다"며 "매크로 충격을 제외하고 삼성전자 주가가 추세 하락한 적은 없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 부회장의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심사위)가 이날 열린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 대상에 포함된다면 지난 1월 '국정농단 공모' 혐의로 수감된 지 207일 만에 일선으로 복귀하게 된다.

심사위는 대상 명단을 검토한 뒤 재범 위험성과 범죄동기, 사회의 감정 등을 고려해 적격 여부를 과반수로 의결한다. 심사위가 가석방 대상자를 추리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결재로 확정된다. 8·15 광복절 가석방은 오는 13일 이뤄진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