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남긴 것은 제철소가 아니라 도서관이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 아들로 미국에서 ‘철강제국’을 일군 그는 66세 때 회사를 팔고 뉴욕 공공도서관 설립에 520만달러를 기부했다. 이후 2500만달러를 들여 미 전역에 도서관 2509개를 지었다.
어린 시절 전보배달원으로 일하던 그는 늘 배움에 목말랐지만 책 살 돈이 없었다. 앤더슨이라는 은퇴 상인이 자기 책 400여 권으로 일하는 소년들을 위한 도서관을 열자 여기서 빌린 책으로 밤새워 공부했다. 그는 훗날 “앤더슨은 그 작은 도서관을 통해 지식의 빛이 흐르는 창을 열어 줬다”고 회고했다.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도 50대 이후 곳곳에 도서관과 학교를 세웠다. 철도 사업가 헨리 에드워드 헌팅턴은 로스앤젤레스 저택에 헌팅턴도서관을 건립했고, 석유 재벌 진 폴 게티는 그 인근에 게티센터 도서관을 열었다.
한국 기업인의 호(號)를 딴 도서관도 많다. 경남 진주 출신인 LG그룹 창업주 연암 구인회는 1968년 진주성에 진주시립연암도서관을 신축했고, 아들 구자경 회장은 이를 상대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주는 부친인 전 제주지사 우당 김용하를 기념하는 제주 우당도서관을 지어 기증했다.
미국 최초의 사립대학인 하버드대는 도서관을 모태로 탄생했다. 교명부터 도서관을 기증한 존 하버드의 이름을 땄다. 이 대학 중앙도서관에는 모교 출신의 장서 수집가 해리 와이드너의 이름이 붙어 있다. 파리에서 희귀본을 구해 오다 타이타닉호와 함께 수장된 그를 위해 어머니가 건립비를 기부했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이진아기념도서관은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숨진 ‘독서광’ 이진아를 기리기 위해 가족이 50억원을 기증해 세운 구립도서관이다. 며칠 전에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서울시립도서관 건립을 위해 사재 300억원을 기부했다. 12세에 이민 가 동네 도서관에서 영어와 미국 문화를 배운 그는 모국에 도서관을 세우는 꿈을 46년 만에 이뤘다.
그의 특별한 기부를 보면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 도서관이었다”는 빌 게이츠의 말을 떠올린다. 어릴 때 도서관에서 ‘지식의 빛’이 흐르는 창을 발견한 카네기가 말년에 “도서관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큰 뜻을 품은 자에게 보물을 안겨준다”고 말한 이유도 알 것 같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