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공교육으로는 이미 시작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교육개혁의 필요성이 날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의 교육 정책은 ‘시대적 역량’을 기르지 못하는 현 교육 내용은 그대로 둔 채 정시와 수시 비율로 싸우고, 학교를 태양광 건물로 바꾸고, 방과후과외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현 교육 정책으로는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 평가는 바꾸지 않은 채 교육과정 개정만 반복하는 것도 안타깝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최근 평가 개혁에 관한 의미 있는 보고서들이 공개됐다.
하나는 서울교육청, 강원교육청, 경기교육청, 세종교육청, 경남교육청의 협력 사업으로 수행된 ‘새로운 학력 평가 지표 구성 및 평가 도구 개발 연구(연구책임자 손민호 인하대 교수)’다. 이 연구는 ‘학력’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학교 내신 평가 체제 개선안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 훈령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학교 평가는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구성한다. 학교 현장에서는 ‘지필평가’를 객관식 선다형 중간·기말고사로 인식하고 있다. 보고서는 수행평가를 형성평가로, 지필평가를 총괄평가로 시행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지필평가에서 공동 출제 의무’ 규정을 삭제해 교사별 평가권을 보장하고, 지필평가를 진단·형성평가로 활용하고 소논문·프로젝트·포트폴리오 등의 수행평가를 총괄평가로 하도록 교육부 훈령이 개정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총괄평가를 정성평가로 하면 평가의 신뢰도와 공정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내신 평가조정시스템 도입을 제안한다. 학교 간 교차 채점을 통해 채점자 편차를 줄이고 공정성을 확보해 교사의 부담감을 덜고 교사에 따른 교육 격차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평가 과제의 형식과 조건이 일관되게 미리 설계하고, 전체가 아닌 표본을 대상으로 교차 채점해 과대·과소 채점된 경우 표본을 조정함으로써 전체를 조정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서울대에서 수행된 논술형 대학수학능력시험 모델 제안 보고서다. 서울대 사범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약 1년간의 연구 끝에 ‘대입 논술형 수능 체제 설계를 위한 평가 시스템 및 교원양성 프로그램 기초 연구: IB 사례를 중심으로(연구책임자 송진웅 서울대 교수)’라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능과 내신이 둘 다 객관식 상대평가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서울대는 우리 학교교육의 정상화 및 질적 성장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할 사회적 책무가 있기 때문에 교육부가 2028년 대입부터 검토하겠다는 논술형 수능 모델 개발에 기여하고자 했다고 보고서에서 기술하고 있다.
서울대가 제안한 미래형 수능은 영국 에이레벨, 프랑스 바칼로레아, 독일 아비투어, IB(국제바칼로레아)의 대입시험 문제 유형을 지향한다. 예컨대 ‘문학작품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학교에서 배운 두 작품을 참고해 논하시오(국어)’, ‘동학혁명이 일본의 조선 병합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는가(역사)’ 등의 논제에 대해 2시간 동안 작성하는 것이다.
서울대 보고서는 특히 IB를 집중 분석해 우리 교육과정, 대입시험, 내신, 교사 양성에 주는 시사점을 기술하고 있다. 미래형 수능은 각 교과의 실질적인 교육 혁신을 위해, 별도 논술 교과가 아니라 모든 교과를 서술·논술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교교육과 대입시험의 일체화를 위해, 미래형 수능은 미래형 내신과 동시에 적용돼야 한다. 지필 선다형 시험은 형성평가로, 서술·논술·프로젝트형 평가는 총괄평가로 바꾸는 교육부 평가 훈령 개정 및 내신조정시스템 도입을 미래형 내신으로 제안하고 있다. 미래형 수능 도입은 최소 3년의 준비기간과 이후 최소 3년의 모의평가가 필요하므로 2028년 대입에 적용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
두 보고서 모두 시험 문제와 채점 기준 예시를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참고할 해외 사례가 많으니 우리도 못 할 이유가 없다. 교육평가 혁신은 시대적 전환기에 절박한 과제다. 주저하다 개혁의 때를 놓친 구한말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