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상징을 다들 랜드마크라고 합니다. 하지만 큰 건물 하나 둘러보는 것보다 덕수궁 돌담길, 한강 공원을 한 번 걸어보는 게 진짜 서울 경험 아니겠습니까? 이 경험을 개선하는 게 ‘감성도시’의 첫걸음입니다.”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건국대 명예교수·사진)는 20년 넘게 서울 도시계획에 참여해온 자타공인 ‘서울 건축 전문가’다. 현재 지하철 역사마다 설치된 스크린도어도 그의 손을 거쳐 서울에 처음 도입됐다. 한려해상공원 외도, 제주 에코랜드, 가평 프랑스문화촌 등 문화공간도 그의 설계를 통해 탄생했다.
지난 6월부터는 서울의 도시 디자이너 역할인 총괄건축가를 맡았다. ‘1000만 도시’의 밑그림에 적용할 도시건축 철학으로는 ‘감성’을 꼽았다. 왜 하필 감성을 선택했을까.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강 건축가는 “도시의 미관, 경제적 역할만이 아닌 다른 가치를 부각해야 서울의 국제적 경쟁력도 올릴 수 있다”며 “우리가 생활하는 도시로서의 경험을 부각해 ‘살아 있는 서울’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는 살아있는 서울의 대표적 예시로 종로 피맛길, 서울 광화문광장을 꼽았다. 서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에게 특별한 장소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울이 갖고 있는 또 다른 감성 요소는 무엇일까. 강 건축가는 주저 없이 ‘한강’을 꼽았다. 수도 한가운데 준수한 수질을 지닌 강이 놓인 곳은 세계적으로 드문데 실제 활용도는 그 가치에 비해 너무 낮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그가 기획한 것이 한강 수변을 도시 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이다.
“서울에 한강과 지천, 실개천까지 다 합치면 서울 전체를 관통합니다. 이 강의 주변 영역만 따져도 서울의 10분의 1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한강 본류도 다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 안타깝죠. 땅속에 묻힌 청계천이 지금은 서울의 중심이 된 것처럼 수변 공간도 도시의 중심 공간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서울 건축 전문가’로 정평이 난 강 건축가의 또 다른 이름은 ‘장애인 건축 전문가’다. 1979년 베를린공과대로 유학해 그곳에서 장애인 건축을 전공했다. 고건 서울시장 시절(1998~2002년) 시각장애인의 지하철 낙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스크린도어 시범설치 사업, 보행약자를 위한 횡단보도 잔여시간 표시기 등이 그가 참여한 대표적인 사업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4월 취임하면서 도심 재개발, 도시디자인 혁신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이를 관통하는 원칙과 디자인 규정을 먼저 세우는 게 강 건축가의 우선 목표다. 그는 “연말까지 구체적인 디자인 또는 심의 기준을 확립하겠다”며 “학자로서 평생을 연구한 ‘장애 없는 건축’도 더욱 확대해 적용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