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형(대각선 길이 110인치) 기준으로 한 대에 1억7000만원인 마이크로LED TV. 이 제품의 별명은 ‘한 땀 한 땀 TV’다. 4K(3840×2160) 해상도 기준 800만 개에 달하는 마이크로 LED(발광다이오드) 칩을 일일이 배치해야 하는 공정 특성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현존 최고 화질을 구현하지만 가격도 그만큼 비싸 아직 일반 소비자의 호응이 크지 않다.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4년 후로 점쳐진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세계 TV용 마이크로 LED 칩 매출이 2025년 34억달러(약 3조8930억원)로 2021년(2300만달러)보다 146배 뛸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8일 발표했다. 마이크로 LED TV용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칩의 수는 4K 기준 800만 개로 정해져 있는 만큼 TV 시장의 성장속도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렌드포스 측은 “마이크로 LED TV는 촬영 원본과 화면에 표현되는 결과물에 차이가 없는 ‘갭리스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제품”이라며 “원가가 조금만 떨어지면 시장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회사는 세계에서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삼성전자는 2018년 ‘더월’ 출시 후 마이크로 LED TV 가격을 낮추는 기술 개발에 주력해왔다. 마이크로 LED TV가 비싼 이유는 LED 칩 원가가 높은 데다 공정이 복잡해 제조에 걸리는 시간도 길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공정 단계를 줄여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원가를 대폭 절감할 계획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 제품의 가격을 8K(7680×4320) LCD TV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다. 현재 삼성의 QLED TV 8K 모델 가격은 크기에 따라 1000만~2000만원 선이다.
우선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PCB(직접회로)를 유리 기반 TFT(박막트랜지스터)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배선을 디스플레이 뒤가 아니라 측면으로 하는 기술, 마이크로 LED 칩을 공중에서 흩뿌린 뒤 한꺼번에 자동 정렬하는 기술 등은 이미 개발이 끝난 상태다. 대량생산 시스템도 마련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TV 공장에 110인치 라인을 증설 중이고, 77·88인치 전용 라인도 새로 건설할 계획이다.
시장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일본 소니도 시장 진입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소니는 올초 세계 최대 IT·가전쇼 ‘CES 2021’에서 크리스탈 LED(마이크로 LED의 소니식 표현) TV를 발표했지만 양산 계획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삼성전자가 시장을 개척해 수요가 충분해지는 시점을 기다리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OLED TV가 개발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니는 초기 기술만 준비해놓은 뒤 LG전자가 시장을 키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입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