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처럼 혁신적인 한국 기업 많아…ESG 부족하면 투자 안한다"

입력 2021-08-08 17:21
수정 2021-08-17 15:33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한 ‘옴니라인’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온라인에서 성공하며 머물고 있는 기업들도 오프라인으로 다시 나와야 합니다.”

아시아 최대 독립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은 지난 6일 서울 청진동 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기술 관련 기업들의 세상이 될 것이고, 그 핵심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뜻을 이미 지난해 투자자에게 보낸 연례서한에 “Every deal is a tech deal(모든 딜은 기술 관련 딜이다)”이라고 적으며 내비쳤다. MBK파트너스의 운용 자산은 245억달러(약 28조770억원)에 이른다. MBK의 작은 움직임에도 시장이 반응하는 이유다.1963년생인 김 회장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뒤 1995년 골드만삭스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의 사모펀드 칼라일로 옮겨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하며 금융계에서 주목받았다. 2005년 MBK파트너스를 세우며 독립해 홈플러스, ING생명, 유니버설스튜디오 등을 인수했다. 김 회장의 언론 인터뷰는 8년 만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투자한 회사들이 내수 기업에 치중해 있습니다.

“여전히 내수시장 투자에 대한 의지와 확신이 매우 강합니다. 다만 내수의 정의가 테크 요소를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투자한 기업인 홈플러스도 쿠팡으로부터 위협을 느끼는 게 사실입니다. 다만 쿠팡처럼 온라인으로 승부를 보는 게 맞는지도 의문입니다.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둘 중 하나인 단일 모델로는 앞으로 성장이 힘들다고 봅니다. 그래서 ‘옴니라인’을 떠올려봤습니다. 미국의 아마존이 오프라인 서점들을 ‘올킬’한 뒤 이제 다시 오프라인 서점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요.”

▷내수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내수는 국가 경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국가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좋으면, 내수 기업도 함께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출은 목적지인 국가의 경제 상황이나 대외 변수 등에 따라 변동이 심해 롱텀으로 투자하기 힘듭니다. 특히 한·중·일 등 3개국은 성장성과 안정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 이 국가에서 내수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기 좋습니다.”

▷한·중·일의 투자 환경은 어떻습니까.

“최근에 싱가포르에서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강연한 적이 있는데, ‘일본이 1980년대 IBM이라면 한국은 2020년대 구글이나 페이스북’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은 역동적이고 기술친화적인 시장입니다. 최근 가격이 높아진 탓에 조금 주춤하지만 경제 수치들을 보고, 기업들을 보면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투자)할 기업이 많습니다. 중국 역시 투자 기회가 큰 국가입니다. 맥킨지가 3년 전 ‘중국은 10년 내 중산층이 10억 명에 달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7년 남았습니다. 이러면 내수시장도 분명 커지겠지요. 특히 중국 기업들은 은행 대출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모펀드엔 더 큰 투자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최근 게임, 교육, 플랫폼 산업 등에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선 이를 중국 리스크라고 부릅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이 좋은 투자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불확실한 규제가 터질 때 기업의 ‘프라이싱(시장 가격)’도 급변합니다. 투자하는 사람들은 그런 리스크를 제대로 읽고 가격을 더 정확히 매기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시장에서 잘못된 프라이싱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 SS펀드(special situation펀드: 주주 또는 회사의 특수 상황에 투자하는 펀드)가 있는 것입니다. MBK파트너스도 최근 이런 투자 기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모펀드 특성상 한번 투자하면 적어도 수천억원대를 집행합니다. 투자를 결정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꼽습니까.

“실사입니다. 잘되는 운용사와 잘 안 되는 운용사의 차이는 실사에서 비롯됩니다. 직접 가보지 않고, 들여다보지 않고 투자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는 임직원이 들어오면 ‘너의 일은 실사다(Your job is due diligence)’라고 합니다. 실사가 제일 중요하고, 그렇게 트레이닝하고 있습니다. 꼭대기부터 시작해 1층까지, 때론 지하 2층까지 계속 파야 회사의 장단점이 보입니다. 그 결과를 믿고 투자하는 것입니다.”

▷MBK가 투자한 큰 기업 수가 38개입니다. 기업 경영도 함께하게 될 텐데 경영 시 가장 중요하게 꼽는 건 뭔가요.

“이익입니다. 매출은 다음입니다. 기업들을 순위 매길 때 대개는 자산 규모로 합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기업은 이익을 내야 하고, 현금 흐름이 좋아야 합니다. 양궁선수들의 체구가 다양한데, 결국 선수의 생명은 화살이 어디에 꽂히는지 아닙니까. 우리는 영업이익을 순위로 매기고, 경영도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기업들이 왜 부동산을 보유하는지 저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부동산은 캐시플로(현금흐름창출)에 도움이 안 됩니다.”

▷요즘 PEF 운용사도 스타트업 투자를 늘리고, 이런 스타트업 중엔 메타버스(가상환경),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기업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투자를 안 합니다. 모르는 분야엔 절대로 돈을 넣지 않아요. 제가 사모펀드 투자자로 활동한 게 23년째인데, 이 기간 가장 중요하게 얻은 교훈은 모르는 분야는 쳐다보지도 말자였습니다. 해당 분야에 대해선 투자 검토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안 할 겁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실사할 때 해당 기업의 ESG도 반드시 챙겨보고 있습니다. ESG가 부족한 기업엔 투자하지 않습니다. ESG가 도덕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수익성 측면에서도 좋습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