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수박값이 왜 이래

입력 2021-08-05 17:35
수정 2021-08-23 09:57
여름철 대표 과일인 수박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12세기 전후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이 원산지인 수박은 실크로드를 거쳐 유럽에서 송나라로, 다시 고려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문헌에 언급돼 있다. 당시엔 서역의 박, 즉 ‘서과(西瓜)’로 불렸다.

지금은 흔한 과일이 됐지만 조선 초기만 해도 수박은 서민이 범접하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수박 한 통이 쌀 다섯 말(40㎏) 값이었다고 한다. 세종 5년(1423년) 10월 8일자 실록에는 한문직이란 궁궐 내시가 수박을 훔쳐먹다 들켜 곤장 100대를 맞고 귀양 갔다는 내용이 소개돼 있다.

수박은 수분(94%)과 당분이 많아 갈증과 피로 해소에 좋다. 한방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이용됐다. 과육은 인후염과 설염 구창 거담을 다스리는 약재로, 씨는 촌충구충제로 썼다. 껍질도 버리지 않고 말려서 콩팥염과 통풍 약재로 활용했다.

수박 종류가 많아진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우장춘 박사가 1950년대 ‘씨 없는 수박’을 소개한 이후 육종학을 기반으로 개량된 품종이 크게 늘었다. 수박의 무게는 보통 4~6㎏ 정도다. 10~30㎏에 달하는 무등산 수박도 있고 세모와 네모 모양의 수박도 선보였다. 애플수박·흑피수박·노란수박·블랙망고수박·복수박 등 맛과 색깔이 다른 다양한 개량 수박들도 판매되고 있다.

최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수박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홍수 피해 이후 수박 재배 면적이 줄어든 데다 올여름 기록적인 찜통더위와 열대야로 속이 물러버리는 속칭 ‘피수박’이 속출한 탓이다. 현장에서는 수박 100개당 팔 만한 수박이 90개는 나와야 하는데 올해는 20개 안팎에 불과하다고 한숨이다.

공급 부족으로 한 달 새 가격이 30% 넘게 뛰었다. 지난해에 비해 가격이 최고 3배에 이른다고 한다. 수박이 아니라 ‘금(金)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4만원이 넘는 수박 가격에 엄두가 안 나는 서민들은 ‘반쪽 수박’ ‘1/4 수박’ 등 조각 수박이나 겨우 맛보는 형편이다.

정부가 추석을 앞두고 달걀 마늘 고춧가루 소고기 등 식탁물가가 치솟자 ‘특단의 각오’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달걀 2억 개를 긴급 수입하고 육류 등 비축물량을 대거 방출한다는 방침이지만, 수박은 대책도 없다. 막판 무더위가 기승이다. 수박도 맘껏 못 먹고 여름을 나려니 고역이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