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시나리오 초안이 어제 공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을 처음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3개안 모두 원자력발전 비중을 6~7%(2019년 기준 25.9%)로 대폭 낮추고, 석탄발전은 0~1.5%로 거의 중단하는 대신, 재생에너지는 최대 70.8%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골자다.
문제는 작년 10월 문 대통령이 급작스레 선언한 ‘2050 탄소중립’만큼이나 급진적 목표를 담았다는 점이다. 선언이 돌출적이었어도 정부가 마련하는 구체방안은 실현 가능성을 최우선에 두고 마련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2018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기준으로 한 1안(96.3% 감축)은 물론, 2안(97.2% 감축)과 3안(100% 감축·탄소배출 0) 모두 국내 경제·산업계가 일제히 “과도한 목표”라고 걱정이 태산이다. 화석연료 발전 의존도가 높은 한국적 현실에서 어떻게 이 목표를 이뤄낼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렇다면 탄소 배출이 적은 원자력 발전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데, 탈원전 정책엔 변함이 없다. 기본 전제가 이러니 재생에너지 비중을 현재(6.5%)의 12배인 70.8%까지 늘린다는 황당한 목표(발전량 기준 76배)로 나타난 것이다. 전국을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기로 덮어야 할 판이다. 향후 30년간 한국 산업의 미래와 일자리를 좌우할 이슈이고 전기요금도 두 배 뛸 수 있는데, 이렇게 뜬구름 잡는 실행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어이가 없다.
역시 어제 대통령 주재로 열린 ‘K-글로벌 백신 허브화 비전 및 전략 보고대회’도 산업계가 기대한 정부의 국산 백신 선(先)구매 약속은 없었다. 백신 개발에 평균 2000억원의 임상비용이 드는데, 올해 정부 지원 자금은 고작 687억원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백신을 반도체, 배터리와 함께 ‘3대 국가전략기술 분야’로 지정하고 향후 5년간 2조2000억원을 투입하겠다”며 ‘2025년까지 글로벌 백신 생산 5대 강국 도약’만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위탁생산(CMO) 대국을 뜻하는 것이지, 국산기술로 개발한 백신 상용화의 의지를 밝힌 게 아니란 점에서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이런 식이니 5년 임기가 끝나가는 판국에도 정부가 이념적 환상에 사로잡혀 ‘뜬구름 잡기’식 정책만 쏟아낸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마차가 말을 끌 듯 본말이 전도된 소득주도성장 집착부터, 가상의 ‘투기세력과의 전쟁’과 임대차 가격통제에 주력하다 파탄난 부동산정책, 재정사업을 번지르르하게 포장한 그린 뉴딜 등 그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국가 중대 정책은 장·단기 효과와 부작용은 물론, 다른 정책과의 정합성 등을 균형있게 검토하고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의 정책은 여론을 앞세워 명분 찾기에 급급하고 반대 여론에는 귀를 막는 식이다. 탄소중립 방안도 500여 명의 탄소중립시민회의를 꾸려 최종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전문성 없는 시민회의나 공론화위원회를 만들고, 관제 여론을 앞세워 국가 정책을 정하는 일을 언제까지 고집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