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자주 말 바꾸는 아랍인, 문서로 남긴 약속 꼭 지키는 이유

입력 2021-08-05 17:53
수정 2021-08-06 02:42
‘아랍’ 하면 많은 사람이 매캐한 폭탄 연기가 가득한 전쟁의 처참한 현장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꽃피웠던 오랜 전통과 역사, 서구와는 또 다른 삶과 문화가 살아 있다.

《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는 이집트 예멘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아랍과 아랍인들의 역사·문화·사회를 다룬 견문록이다. 저자는 2003년부터 18년 동안 아랍권에서 지내며 현지인과 함께 생활해왔다.

저자는 현지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집트에 처음 도착했을 때 피라미드를 보러 갔다. 피라미드를 코앞에 두고 그가 맞닥뜨린 건 조상의 유산을 빌미 삼아 돈을 뜯어내려고 달라붙는 이집트인들이었다. 쉼 없이 말재간을 부리며 자신을 붙잡는 그들을 보며 저자는 생각했다. ‘그토록 위대했던 파라오의 후손들이 왜 이렇게 사는가?’ 그날 이후 저자의 관심은 ‘아랍어’에서 ‘아랍인’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아랍인을 만날수록 그들의 천성, 그 천성을 만들어낸 역사에 빠져들었다. 그는 ‘가장 선진적인 문명을 영위했던 이들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거대한 질문부터 시작해 다양한 질문으로 확장한다. 아랍인은 왜 자신의 주장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모든 결과는 신의 뜻에 맡기는가. 아랍인은 왜 말로 한 약속은 안 지켜도 서신으로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가.

이들은 비슷한 문화를 가진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저자는 “아랍 지역의 22개 국가마다 문화와 관습이 다른 건 당연하다”며 “그 속으로 들어가면 부족·종파·가문별로 다르고, 심지어 산유국이냐 아니냐에 따라 차이점과 주의점이 산재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품었던 물음표의 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며 강조한다. “이제 아랍을 떠올리면, 폭탄 연기가 매캐하게 풍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아랍인’과 그들이 만들어 온 매혹적인 역사,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들이 보일 것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