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종·학력·재산 따라 '목숨값' 다르게 쳐주는 씁쓸한 현실

입력 2021-08-05 17:53
수정 2021-08-06 02:43
사람의 목숨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의 보건·안전에 대한 의사결정, 법원의 배상금 산정 등 수많은 분야에서 생명에 가격표를 붙이는 게 현실이다. 냉혹한 전문가들만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하는 건 아니다. 생명보험료와 보험금을 따져보는 사람,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며 양육 비용을 가늠해보는 부부도 생명의 가치를 계산하고 있다. 사람의 목숨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상식도 늘 통용되진 않는다. 악랄한 범죄자와 소방관 중 한 명만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다면 전자를 택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유엔인구기금의 보건경제학자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은 《생명 가격표》에서 다양한 예시를 통해 생명에 가격을 매기는 현실과 그 작동 방식을 설명한다. 2001년 9·11 테러 희생자 유족에게 지급된 보상금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족이 받은 보상금 액수는 25만달러에서 700만달러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사망자의 나이와 평생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소득을 비롯한 여러 요소를 반영해 계산한 결과다.

인간의 생명에는 늘 가격표가 붙고, 이렇게 책정된 가격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예컨대 기업의 작업장에는 수많은 재해 위험이 존재한다. 모든 위험을 완벽하게 예방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업은 안전조치의 비용과 편익을 분석한다. 사고로 예상되는 생명 손실 비용보다 예방 비용이 높으면 이를 내버려두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 된다.

문제는 생명의 값을 산정하는 현행 방식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다. 계산에 인종이나 학력, 성별 등에 대한 편견이 반영될 때도 많다. 계산이 잘못돼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저자는 ‘목숨에 값을 매겨서는 안 된다’고만 되뇌어서는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한다. 대신 생명에 값을 매기는 방식을 이해하고 잘못된 계산법에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어떤 경우에도 억만장자 한 명의 생명이 일반인 100명의 목숨보다 가치있다고 판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생명에 공정한 가격표가 매겨지도록 애써야 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