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군일 줄 알았는데 저승사자…美SEC 위원장의 '코인 저격' [임현우의 비트코인 나우]

입력 2021-08-04 22:01
수정 2021-09-30 11:02
한국경제신문의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코알라'를 만나보세요!
▶무료 구독하기 hankyung.com/newsletter


"지금 우리는 암호화폐 시장 투자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서부시대'와 같다."

암호화폐 시장을 총잡이가 활개치던 무법천지에 비유한 이 사람은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겐슬러 위원장은 3일(현지시간) 애스펀 안보포럼에서 암호화폐를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SEC는 미국 내 증권시장 감독, 법 위반 조사·제재, 공시 의무 부과, 증권사 검사 등을 맡는 '저승사자' 같은 곳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호재로 꼽히는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의 미국 출시 역시 SEC가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시가총액 6위 암호화폐 리플과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겐슬러 위원장은 올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명했다. 당시 업계 한쪽에선 새 SEC 위원장이 암호화폐 친화적 정책을 펼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그는 2018년부터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디지털화폐와 블록체인을 강의하는 등 이쪽 분야에 정통한 인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임 이후 그의 행보는 정반대다. 겐슬러 위원장은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에서 "사람들이 정말 보호받지 못하는 일부 분야가 있다. 특히 비트코인이 그렇다"며 투자자 보호 필요성을 역설했다. 암호화폐 시장이 완전히 규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의회와 협력해 이를 바로잡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겐슬러 위원장의 생각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5월 CNBC 인터뷰다. 그는 비트코인을 "투기적이고 드문 디지털 가치 저장 수단"으로 규정하면서 "더 큰 투자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암호화폐거래소를 감독할 규제당국의 존재가 필요하며 다수의 암호화폐는 실제 자산처럼 거래되는 만큼 SEC 소관 업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수많은 가상 토큰은 유가증권"이라며 "유가증권에 대해서라면 SEC가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서도 "우리는 암호화폐 거래, 상품, 플랫폼이 규제 공백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의회로부터 추가 권한을 승인받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암호화폐 시장이 사기와 조작에 취약하다는 점을 우려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미국인들이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플랫폼 등에서 암호화폐를 사고 팔고 빌리고 있지만 투자자 보호에서 공백이 크다"고 지적했다.


암호화폐에 대한 겐슬러의 입장은 감투를 쓰고 나서 돌변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원래 겐슬러는 20년 가까이 골드만삭스 등 유명 투자은행(IB)에서 일하는 동안 정부의 규제 철폐를 주장했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규제 강화론자로 전향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을 지내며 파생상품 규제 강화를 주도했다. 월스트리트가 반대하는 각종 정책을 입안해 '고집 센 규제론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겐슬러 위원장은 SEC가 계속 뭉개고 있는 비트코인 ETF 승인에 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외신들은 "사실상 연내 출시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쪽을 아는 사람이 왔으니 이쪽에 잘해줄 것이라는 비트코이너들의 기대는 빗나가고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