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농축산물발(發) 가격 인상이 가공식품으로 옮겨붙으면서 밥상물가를 뒤흔들고 있다. 밀 쌀 채소 등 원재료 가격 급등이 즉석밥, 햄, 참치캔, 라면 등 장바구니에 주로 담는 가공식품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재료 인상, 노동력 감소, 이상기후 등의 악조건이 겹쳐 하반기에도 소비자 물가 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소비자 눈치를 보던 가공식품업체마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며 줄줄이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서민식탁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라면 가격 인상은 가공식품 줄인상의 신호탄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가격 세 배 뛴 시金치쌈채소로 시작된 밥상물가 상승세는 신선식품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2일 시금치 도매가격 평균(4㎏ 기준)은 4만9580원으로 전월(1만7884원) 대비 177.2% 상승했다. 지난달 26일 가격은 3만5420원으로 1주일 만에 40.0% 뛰었다. 팜에어한경에 따르면 같은 기간 배추(74.1%), 부추(58.0%), 양배추(53.8%) 가격도 크게 올랐다. 지난달부터 폭염이 이어지며 채소 이파리 끝이 타들어가 품질 좋은 상품의 출하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여름 대표 과일인 수박에 이어 8~9월께 수확하는 사과와 배 작황도 심상치 않다. 사과, 배는 가을철 수확한 작물을 비축해 1년간 판매하는데, 지난해 역대급 장마로 수확량이 적어 올해까지 가격이 높았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배 가격은 올해 3월 냉해로 출하량이 줄어 전년 대비 10%가량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축산은 늘어난 ‘집밥 수요’와 폭염으로 인한 폐사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은 올해 추석 한우 선물세트 가격을 지난해에 비해 많게는 10%까지 올렸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도축된 한우는 37만6103마리로 최근 5년간 최대치다. 지난해(36만9265마리)보다 2.7% 늘었다. 공급이 늘었지만 소비자들이 지급하는 소매가격(한우등심, 100g)은 2일 기준 평년 대비 15.0% 높다. 늘어난 공급량을 수요가 상쇄했다는 의미다.
한우 가격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재난지원금이 고급 식재료인 한우 소비를 촉진시키는 경향이 있는 데다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가공식품도 도미노 인상가공식품도 심상치 않다. 상반기 시작된 가격 인상 릴레이가 계속되고 있다. 연초 풀무원이 두부와 콩나물 가격을 10~14% 인상한 데 이어 2월 CJ제일제당이 햇반 가격을 6.8% 올렸다. 7월 들어서는 CJ제일제당이 스팸 등 햄·소시지류 가격을 9.5% 올렸고, 동원F&B도 참치캔 가격을 10% 인상했다. 과자와 음료 등 기호식품 가격도 크게 올랐다. 이달부터 라면 가격도 오른다. 오뚜기는 평균 11.9%, 농심은 평균 6.8% 인상했다.
가공식품 가격이 오르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밀 등 국제 원재료 가격 상승이다. 미국, 캐나다 등에서 폭염과 가뭄으로 인한 작황 피해가 심각한 데다 코로나19로 인력 이동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공급량이 줄어 원재료 가격이 급등했다. 3일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 따르면 미국 소맥 가격은 부셸(1부셸=27.216㎏)당 724.30달러로 1년 새 37.4% 상승했다. 같은 기간 옥수수 선물 가격도 75.8% 올랐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공식품의 주요 원재료인 밀가루, 전분당, 유지, 설탕 가격이 모두 올라 인상분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해상운임 등 물류비 상승의 영향도 크다”고 말했다.
농산물 가격이 안정돼도 한번 올린 가공식품 가격을 다시 내리는 일은 거의 없어 장바구니 물가 부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이상기후, 노동환경, 물류 등 국제 원재료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며 “하반기에도 애그플레이션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전설리/노유정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