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4 대책’에서 공공재건축이 도입됐을 때부터 사업 성공에 대한 우려가 컸다. 원래 공공성이 강한 재개발에는 공공기관이 개입하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순수 민간 사업으로 진행돼온 재건축은 다를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공급 대책의 주요 파트너인 서울시에서도 “공공재건축에 적극 찬성하기 어렵다”며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을 정도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공공재건축과 공공재개발은 목표가 각각 5만 가구, 4만 가구인데 확보된 물량은 808가구, 2750가구에 불과하다. 전체 목표 9만 가구의 4% 수준에 그친다. 지지부진한 공공개발정부가 공공주도 개발 카드를 처음 꺼내든 것은 지난해 5월이다. 스무 번이 넘는 대책에서 수요 억제에만 집중했던 정부가 공급 부족 문제를 인정한 시점이다. 하지만 공급 부족을 푸는 방식은 철저하게 공공 주도로 짜였다. ‘5·6 대책’에서 공공재개발을 도입한 데 이어 ‘8·4 대책’에선 공공재개발의 범위를 신규 지역으로 넓히고 공공재건축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공공재건축은 ‘민간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줘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릴 묘안’으로 소개됐지만 성적표는 초라하다. 공공재건축은 주민 동의 10%만 있어도 지정이 가능한 후보지조차 서울 중랑구 망우1·광진구 중곡·영등포 신길13·용산 강변강서 4곳, 1537가구에 불과하다. 후보지였던 관악구 미성건영(695가구)이 민간 방식으로 선회하면서 물량이 크게 줄었다. 사업시행자 지정이 가능한 2분의 1 동의를 확보한 곳은 2곳, 808가구에 불과하다.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호응도가 높았던 공공재개발도 이후 단계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선정된 24곳(2만5000가구)의 후보지 중 동의율 요건 등을 확보해 사업시행자 지정을 신청한 곳은 동대문구 용두1-6·신설 1구역, 동작구 흑석2, 종로구 신문로 등 4곳, 2750가구뿐이다. 이 중 준강남권에 있는 데다 공급물량이 가장 많은 흑석2(1310가구)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동의율 산정에 문제가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어 최종 사업시행자 지정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공재개발은 사업이 구체화될수록 임대 건립 등에 대한 거부감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며 “가시적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공개발 거부 확산공공개발의 실패는 처음부터 예견됐다. 정상적으로 추진이 가능한 민간 사업들을 막아놓고 억지로 공공 방식으로 유도하다 보니 민간 참여가 저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됐다. ‘코너에 몰려’ 공공 방식으로라도 사업을 하려던 기존 재개발지역이나 재개발 해제구역들도 야당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민간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어 공공개발에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공공재건축·재개발 추진이 더딘데도 정부는 올해 ‘2·4 대책’을 통해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과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을 추가로 도입했다. 민간 사업을 옥죄는 기조를 이어가며 공공의 역할을 한층 더 강화한 사업을 내놓은 것이다. 두 사업은 공공이 조합과 함께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토지를 수용해 직접 개발하는 방식이다.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은 반년이 다 되도록 후보지 윤곽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 사업의 인센티브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및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 배제를 제시했지만, 2년 실거주 의무는 최근 백지화돼 무의미해졌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민간에선 자신의 땅을 공공에 넘긴다는 데 엄청난 거부감이 있다”며 “호응이 이 정도로 없는 것은 제도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도심 공공주택 사업의 경우 서울 신길4구역(1199가구), 부산 전포3구역(2525가구)·당감4구역(1241가구), 대구 달서구 신청사 인근(4172가구) 등이 후보지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주민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후보지부터 선정해 후폭풍이 거세다는 지적이다.
이태희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동의율을 확보한다고 해도 초과수익 산정 방식, 비용 분담 주체, 세입자 대책 등 갈등이 불보듯 뻔하다”며 “무엇보다 공공분양이라는 명목으로 분양가를 낮춰야 한다는 요구를 조합이 수용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