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물결인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튀니지의 시계가 거꾸로 흐르고 있다. 당시 튀니지는 유일하게 정치적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 '대통령의 쿠데타'로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튀니지의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사진)은 지난달 26일 야간 통금령을 발동했다. 대통령 측은 성명을 통해 "8월 27일까지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7시부터 오전 6시까지 긴급한 건강상 문제나 야간 근무자를 제외한 사람과 차량의 이동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도로와 광장 등 공공장소에서 3인 이상의 집회도 금지했다.
이는 사이에드 대통령이 히셈 메시시 총리와 이브라힘 바르타지 국방부 장관, 하스나 벤 슬리마네 법무부 장관 대행을 해임하고 의회 기능을 30일간 정지시킨 데 불만을 품은 세력의 시위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조치다. 대통령 발표 이후 군 차량이 의회 청사를 에워싼 채 의원들의 출입을 막았고, 의회 밖에서는 시위대와 군인들이 대치하는 등 소요 사태도 벌어졌다.
튀니지는 '아랍의 봄' 이후 2018년 5월 처음으로 지방선거를 실시했고, 2019년 10월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이에드 대통령이 당선됐다. 하지만 높은 실업률 등 경제난, 정치적 갈등과 부패에 대한 국민 불만이 커진 데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가세하면서 민생고에 민심이 들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이에드 대통령은 당선 당시 확실히 정계의 아웃사이더였다"면서 "그가 이번 조치로 정치적 반대파에 일격을 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사이에드 대통령은 2011년 민주화 운동 이후 국가를 잘못 운영해온 부패 정치엘리트들을 단죄하기 위해 추가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왜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4년 뒤) 67세의 나이에 독재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겠느냐"며 "힘들게 쌓아온 튀니지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를 보존할 것을 맹세한다"고 밝혔다. 나치 압제로부터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민주주의 국가로 재건시킨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을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또 일각에서 쿠데타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법학자 출신으로 법을 잘 안다"며 "쿠데타가 아니라 헌법에 따른 정당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여론은 최근 튀니지 지역 컨설팅펌 엠르호드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7% 이상의 응답자가 사이에드 대통령의 개입을 환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평론가인 타렉 칼라우이는 "그의 최종 목표는 정치지형에 대한 구조조정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준의회제(semi-parliamentary)인 튀니지 정치제도를 확실한 대통령제로 바꾸기 위해 국민투표를 진행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튀니지의 독재화를 우려하는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튀니지의 제1당인 엔나흐다 등 야당과 국제사회는 즉각 비판하고 나섰다. 엔나흐다 측은 "헌법, 엔나흐다 당원들, 튀니지 국민에 반하는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튀니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려하고 있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아부다비에 있는 뉴욕대의 강사 모니카 마르크스는 "사이에드 대통령은 구세주 콤플렉스와 부패 정치인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그의 비판은 종종 그럴듯하지만, 민주주의 자체를 죽이겠다고 위협할 정도로 참혹하다"고 지적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