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 노원구에 집을 알아보던 박모 씨(35)는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다른 부동산에도 문의했느냐. 괜히 이 부동산, 저 부동산에 전화해 가격 물어보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왜 그러냐"는 박 씨의 질문에 중개인은 "부동산 여러 곳에 전화해 집주인이 전화 몇 통 받으면 사는 사람이 많은 줄 알고 가격이 더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6월 부동산 세제가 강화되고 매물이 줄면서 '집주인 우위'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중개인이 집값이 올라간다며 매수인 입단속을 시키는가 하면 매수인이 집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자금 출처를 증명하라는 집주인도 있다. 집값이 더 오를 것 같다는 이유로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파기하는 주인도 있다. 지금은 집주인이 '갑'2일 일선 부동산 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이같은 상황 때문에 부동산 중개인이 매수인 입단속을 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노원구 월계동의 한 공인 중개 대표는 "요즘은 매물이 없어서 집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다른 부동산에는 전화하지 말아달라. 이 부동산, 저 부동산에서 집주인한테 전화하면 집주인이 내놨던 매물을 거둬들이는 건 물론 가격도 올린다"고 말했다.
집을 사겠다는 사람의 자금 출처를 확인하겠다는 집주인도 있다.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공인 중개 관계자는 "주인마다 다르긴 하지만 집주인이 매수자 자금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다"며 "서초구뿐 아니라 강남구 등 집값이 15억원이 넘어가면 대출이 안 나오기 때문에 확실한 거래를 위해 이 같은 요구를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집값이 더 오를 것 같자 돈을 물어주고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도 나온다. 강서구 마곡동의 한 부동산 중개 관계자는 "매수인이 집을 20억원에 사겠다면서 가계약을 걸고 갔는데 집주인이 갑자기 변심해 계약금을 2배로 물어주고 계약을 파기했다. 가격이 더 뛸 것이라 판단해 계약금을 물어주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전했다.
민관 수치 모두 '집주인 우위' 가리켜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일단 거래 가능한 매물 자체가 크게 줄어들면서다. 부동산 정보 제공 앱 아파트실거래가(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지역 매물은 3만9415건으로 지난 2월22일(3만9695건) 이후 약 6개월 만에 다시 3만건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 6월 부동산 세제가 강화하면서 다주택자 등이 보유하고 있는 매물들이 시장에 나오기 어려워졌다. 그러면서 다주택자들은 매도 대신 증여를 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기준 전국 아파트 증여 건수는 8040건으로 5월(7347건)보다 9.4% 늘었다.
시장에 매물이 없는 상황에서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진 것도 주요 요인.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 지수는 107.6으로 지난주(107.7)보다 소폭 낮아졌다. 서울은 4월 둘째 주부터 지난주까지 16주 연속 매매수급 지수가 기준선을 웃돌며 '매도 우위' 시장이 유지되고 있다.
매매수급 지수는 부동산원의 회원 중개사무소 설문과 인터넷 매물 건수 등을 분석해 수요와 공급 비중을 지수화한 것이다. '0'에 가까울수록 공급이 수요보다 많고 '200'에 가까울수록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다. 기준선인 100을 넘어 높아질수록 매수심리가 강하다.
시장에서도 '사자'세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내놓은 주택가격동향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매수우위지수는 103.3이다. 지난 2월 이후 5개월 만에 다시 기준선인 100을 넘어섰다. 이 지수는 지난 3~6월엔 100 미만이었다. 이 지수는 전국 4000여개 회원 중개사사무소를 대상으로 조사한다. 0~200 범위로 지수가 100을 넘어서면 매수자가 많고, 지수가 100 미만이면 매도자가 많다는 뜻이다.
전세 시장 역시 '집주인 우위' 분위기다. 서울 전세수급 지수는 지난달 넷째 주(26일) 기준 107.4로 재작년 10월 넷째 주(28일) 이후 1년 8개월 동안 줄곧 기준선을 상회했다. KB리브부동산이 내놓은 전세 수급 동향도 지난달 기준 174.3으로 지난달(166.8)보다 7.5포인트 오르면서 2019년 3월 이후 지속된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