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사이클' 탄 제조업…선제투자·新사업·구조조정 '3박자' 통했다

입력 2021-08-01 17:39
수정 2021-08-09 15:55
지난해 초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글로벌 경제를 ‘뇌사 상태’에 빠뜨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한국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GDP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제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제조업 위기론’까지 불거졌다.

하지만 기우였다. 코로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지만 국내 제조업체들은 올 상반기 역대급 실적을 내며 글로벌 시장을 질주했다. 연간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내는 ‘1조 클럽’ 숫자도 역대 최고치를 찍을 전망이다. 기업들의 선제적 투자와 포트폴리오 다변화,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이 제조업 부흥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슈퍼 사이클’ 탄 기간산업1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조 클럽 진입이 유력한 제조업체는 29곳에 달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작년(11개)의 두 배가 넘는다. 최근 5년 새 가장 많은 기업이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던 2018년(18개)에 비해서도 50% 이상 증가했다. 제조업 질주의 중심엔 석유화학·정유·철강 등 기간산업이 자리잡고 있다. 업종별로는 ‘석화 빅4’와 ‘정유 빅4’가 8곳으로 올해 증가분(18곳)의 44%를 차지했다. 글로벌 경기 회복과 코로나 극복을 위한 각국 정부의 돈풀기가 맞물리면서 원유,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해외 경쟁사와 비교해도 눈부신 실적을 낸 배경을 코로나 특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1조 클럽 제조업체가 지난해(11곳)와 비슷한 12곳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 올해 1조 클럽이 유력한 기업은 석화 및 정유업체 외에도 전자(3곳), 해운·상사(3곳), 철강(2곳), 배터리(1곳), 발전(1곳) 등 업종별로 다양했다.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는 올 상반기 각각 1조2002억원과 678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반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두 기업 모두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이 프로필렌, 윤활유 등 비정유 제품에서 나왔다. 기존 주력 업종인 정유에만 안주하지 않고 석유화학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 결실을 본 것이다. 한화케미칼의 후신인 한화솔루션도 폴리염화비닐(PVC), 가성소다 등 산업 기초소재 수요 증가로 2분기에만 지난해 전체와 버금가는 221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한화솔루션은 첨단소재뿐 아니라 태양광 사업부문인 큐셀로도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빛 발한 기업들의 선제 투자미래를 내다본 기업들의 선제적 투자 영향도 컸다. 삼성SDI는 올 상반기 428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적자를 감수하며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에 집중했던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사실상 첫 흑자를 냈다. 의료·헬스케어 소재시장 공략을 위해 2008년 NB라텍스 시장에 진출, 꾸준한 증설로 세계 시장 1위를 지켜온 금호석유화학은 상반기에만 1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효성티앤씨는 세계 시장 점유율 32%를 확보한 신소재 스판덱스를 앞세워 역대급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스판덱스는 강도와 신축성이 좋아 레깅스, 등산복 등 스포츠의류에 쓰인다. 2007년부터 꾸준히 이어온 대대적 투자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도 또 다른 원동력이 됐다. 지난해 유동성 위기에 허덕이던 두산중공업이 올 1, 2분기 연속 흑자를 내며 상반기에만 507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탈원전’이라는 악재를 딛고 소형원자로(SMR), 수소발전,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업체로 성공적으로 변신하며, 유동성 위기로 3조원 넘는 자금 지원을 받은 지 불과 1년 만에 연간 영업이익 1조원 달성 기대를 높였다. 2016년부터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간 HMM도 구조조정 성공 사례다. 정부와 산업은행의 발 빠른 투자를 통해 2만4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12척을 대거 발주하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류성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전략팀장은 “특유의 최적화 역량과 기술 확보 노력이 위기에서 살아남아 회복기의 과실을 취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며 “경기회복이 본격화하면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