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가짜뉴스 근절을 명분으로 언론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기로 하면서 ‘언론 재갈 물리기’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민주당은 해당 법안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가짜뉴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 등에 다 있다”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과 관련해 고등학생이 워싱턴포스트(WP)에 3000억원을 청구해서 이겼다. 합의해서 손해배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언급한 WP 사례는 2019년 고교생이 낙태 반대 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미국 원주민 인권활동가를 모욕하는 듯한 동영상이 퍼지면서 발생했다. WP 등은 트럼프 지지자로 추정되는 백인 학생의 부적절한 태도를 비판하는 보도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당 학생이 원주민 활동가들로부터 조롱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해당 고교생은 WP 등에 2억5000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김 의원의 주장과 달리 이 사건은 양측이 합의하면서 재판이 열리지 않았다. 김 의원은 손해배상 규모가 약 3000억원이라고 언급했지만, 양측이 합의 조건을 공개하지 않아 합의금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미국에는 언론 보도만을 규율하기 위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WP 사례에서도 가짜뉴스가 아니라 명예훼손이 쟁점이었다. 재판은 한 차례 기각되기도 했다.
미국이 명예훼손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미국에는 한국과 달리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없기 때문이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에는 형법상 명예훼손은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 언론 중재 등 다양한 구제장치가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집권 여당이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는 것은 언론 길들이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