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기는 무엇일까. 초인적인 인내심을 시험하는 마라톤일까. 인간의 유연함의 한계를 확장하는 체조일까. 아니면 새처럼 날아오르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도전하는 장대높이뛰기일까.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높이를 추구하는 올림픽에서 어느 하나 의미 없고 소중하지 않은 경기가 없겠지만, 가장 주목받는 경기는 인간 스피드의 경연장인 남자 육상 100m일 듯하다.
‘번개처럼 빠르다’란 별명을 지닌 우사인 볼트. 2008 베이징, 2012 런던, 2016 리우데자네이루까지 올림픽 3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이룩한 그가 은퇴한 뒤, 누가 그의 후계자가 될 것인지는 이번 도쿄올림픽의 최대 관심사다. 결승이 벌어지는 8월 1일 오후 9시50분은 세계가 가장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다.
육상 100m 못지않게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경기를 꼽으라면 수영 자유형 100m일 것이다. 왜 수영이냐고? 하계올림픽이니까. 그 수영 자유형 100m에서 18세 청년 황선우가 올림픽 역사를 새로 썼다. 그의 올림픽 첫 무대에서 황선우는 자유형 100m 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고?
그동안의 올림픽 기록을 추적해 보자. 남자 자유형 100m와 아시아의 메달 인연은 1952년 헬싱키 대회에서 일본의 스즈키 히로시가 은메달을 딴 이후 단절됐다. 1956년 멜버른 대회를 마지막으로 아시아 선수가 이 종목에 결승무대까지 진출해본 적이 없다.
이번 여름 도쿄올림픽에서 황선우는 결승무대에 오르면서 65년간을 이어온 아시아 선수 잔혹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남자 자유형 100m는 200m나 400m에 비해 아시아 선수들에겐 넘사벽이었다.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이었다. ‘마린보이’ 박태환의 주종목은 200m, 400m였다. 어제 열린 자유형 100m 결승에서 황선우는 역동적인 경주를 펼쳤지만 메달권에 들지는 못했다. 그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그의 도전은 이어질 것이다.
올림픽은 자신의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의 경연장이다. 주변의 기대와 미디어의 관심이 맞물려 빚어내는 그 압박감은 상상하기 어렵다. 2016 리우 올림픽 5관왕을 차지하며 ‘체조 여왕’으로 숭배받던 미국의 시몬 바일스조차 압박감을 감당하지 못해 이번 도쿄올림픽 무대에서 경기 도중 포기할 정도다.
오죽하면 감독들이 선수들에게 댓글 읽기 금지를 주문할까. 2018 평창올림픽 때 대부분 사람들에겐 이름조차 생소하던 컬링을 국민스포츠로 등극시킨 팀킴. 그들은 대회가 끝날 때까지 스마트폰을 아예 꺼놓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MZ세대는 다르다. 그들은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한다. 2020 도쿄올림픽 양궁 ‘2관왕’(아직 개인전이 남아 있어 3관왕에 등극할 수도 있다) 안산은 자신에게 욕설을 보낸 한 네티즌에게 공개적으로 맞섰다. “방구석에서 열폭(열등감 폭발) 디엠(다이렉트 메시지) 보내기 vs 올림픽 금메달 두 개.” 좌고우면 없이 명쾌하다. 숨지 않고 담대하다. 그 담대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들과 정정당당하게 겨뤘다는 것이 그의 자산이 된 것 아닐까.
자유형 200m 결승에서 150m까지 폭발적 속도로 선두를 유지했던 황선우는 마지막 50m를 버티지 못했다. 국제무대에서 산전수전(수영이니 산전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만) 다 겪은 노련한 선수들의 경기운영 전략에 휘말린 것일까. 자신의 체력을 과신한 것일까. 처음 150m까지 세계를 열광시켰던 그의 레이스는 결국은 ‘과속스캔들’로 끝났지만, 그는 평생 갈 값진 교훈을 첫 올림픽 무대에서 얻었다. 서양 선수의 우월한 체력조건이란 변명 속으로 숨을 수 없다.
세계무대는 워라밸, 소확행의 문법과는 다른 세상이다. 목표와 열정, 집념과 노력이 지배하는 무대다. 출발선이 다르다고 불평하지 말고, 나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 무대에서 한 번만이라도 뛰어보면, 지금까지의 세상이 얼마나 좁았던지, 그리고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담대한 열정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세계 무대는 MZ세대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