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해운대란으로 배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파업까지 벌어지면 수출길은 완전히 막힐 텐데….”
최근 만난 한 수출 중소기업 대표는 이같이 말끝을 흐리며 답답해했다. HMM(옛 현대상선)에 창사 이후 첫 파업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데 대한 우려다. HMM 사무직원들로 구성된 육상노조는 29일 대의원회의를 열고 찬반투표를 통해 중앙노동위원회 쟁의조정을 신청하기로 했다. 노조는 중노위 조정도 불발될 시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노조는 사측과의 임단협 교섭에서 25%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사측이 5.5% 인상과 격려금 카드를 내밀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1년부터 8년간의 임금 동결과 올해 예상되는 사상 최대 실적의 보상까지 한꺼번에 받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도 노조의 요구가 막무가내 수준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HMM 육상직 직원 임금은 2012년 이후 8년간, 해상직 직원 임금은 2015년을 제외하고 2013년부터 6년간 제자리걸음을 했다. 지난해 HMM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6250만원이다. 글로벌 선사들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최근 한국 선원 채용에 나선 MSC가 계약직 갑판원에게 월 5000달러(약 573만원)를 제시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반 기업으로 치면 사원급 계약직에 HMM 정규직 연봉보다 높은 6만달러(6800만원)를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파업 강행 시 국내 기업들의 수출길이 완전히 막힐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선박 부족 및 운임 상승으로 인한 화물대란으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업으로 항만 하역작업에 차질이 생기면 선박 회전율도 급감해 물류가 완전히 마비될 수 있다. 일각에선 HMM이 파업을 강행할 시 글로벌 해운동맹에서 퇴출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수출업계에선 “노사가 접점을 찾을 때”라는 주문이 나온다. 사측도 직원들의 박탈감을 헤아릴 필요가 있지만 노조도 양보와 타협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HMM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계속기업’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 의심을 받았다. 2016년부터 3조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친 것도 경영 정상화에 기여한 요인 중 하나인 건 맞다. 하지만 최근 찾아온 해운업 호황은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와 산업은행도 “노사 문제여서 관여하기 어렵다”며 뒷짐만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산은은 HMM의 지분 24.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HMM 파업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는 중소 수출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