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 타임에는 구역별 순환정전에 들어갑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 단지. 준공된 지 30년째인 이 아파트 승강기에는 지난 23일 ‘순환정전 실시’ 안내문이 붙었다. 지속되는 폭염으로 가정 내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자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관리사무소 측은 “단지를 두 구역으로 나눠 전력 사용이 많은 오후 7~11시에는 번갈아 정전하기로 했다”며 “수배전반 용량 부족으로 인한 정전 사태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수배전반은 발전소로부터 전력을 받아 나눠주는 전력시스템을 말한다. ‘정전 막아라’…비상 걸린 아파트들
27일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이 단지 외에도 수도권 곳곳의 노후 아파트에서 이 같은 자체 ‘정전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여름철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자 노후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정전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는 ‘에어컨 홀짝제 실시’ 안내문이 붙었다. 이 아파트는 준공 30년이 넘은 5500가구의 대규모 단지다. 관리사무소 측은 “3년 전 폭염 때 정전으로 주민이 큰 불편을 겪은 적이 있어 이를 막고자 선제적 절전 캠페인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78년 준공된 서울의 한 아파트도 최근 ‘절전 안내문’을 공지했다. 이 아파트는 “여름철을 맞아 에어컨 사용이 급격히 증가해 정전 사태가 심각히 우려된다”며 “변압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과다 사용이 감지되면 정전 사태 방지를 위해 강제로라도 단전 조치가 시행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지어진 지 35년이 넘은 강남의 또 다른 아파트도 “단지 내 정전사고 방지를 위해 에어컨은 26∼28도로 설정해 달라”고 주민에게 당부했다. 속출하는 정전실제로 정전이 발생하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3일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일시적으로 전력 공급이 차단돼 18개 동 가운데 8개 동, 약 800가구의 전기 공급이 1시간20분 동안 차단됐다.
경기 의왕시의 한 아파트 단지 1개 동도 지난 22일 오후 9시부터 이튿날 오전까지 전기 공급이 끊겨 주민이 불편을 겪었다.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 580여 가구도 이틀 밤 연속 정전되는 등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정전은 전력 과부하로 인한 노후 변압기와 차단기 고장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노후 전기설비를 교체하려면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어 아파트 입주민이 뜻을 모으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어려움을 고려해 지난 4월 한국전력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아파트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 사업’을 했다.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을 신청한 아파트 단지 중 200곳에 대해 변압기·저압 차단기 자재 가격의 최대 80%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한전 관계자는 “해당 사업은 2005년부터 매년 시행해왔으며 신청 아파트 단지 중 노후도, 고장 빈도, 변압기 용량 등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