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할 수 있도록 했던 정부의 훈령이 드디어 바뀌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김치의 중국어 번역 및 표기를 기존 '파오차이(泡菜)'에서 '신치(辛奇)'로 명시했다.
문체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 개정안이 22일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기존 훈령에서 김치의 중국어 번역 및 표기 용례로 제시됐던 파오차이를 삭제하고, '신기(중국어 발음 신치)'로 바꿨다.
앞서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는 중국어에 '기', '김' 소리를 내는 글자가 없어 김치를 소리 나는대로 표기하지 못하는 점을 고려해 중국어 발음 약 4000개를 분석하고, 중국 8대 방언 검토와 주중 대사관 및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신치'를 김치의 중국어 표기로 마련한 바 있다.
올해 초 김치의 중국어 번역 후보 용어 16개를 추가 검토할 때에도 '신치'는 김치와 발음이 유사하며, '맵고 신기하다'는 의미를 나타내므로 김치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용어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관계 기관은 김치 관련 중국어 홍보 콘텐츠 등을 제작할 때 김치를 신치로 표기하게 된다. 민간 부문에서는 해당 훈령 적용을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김치업계 및 관련 외식업계 등에서는 사업 환경에 따라 훈령을 참고해 번역·표기할 수 있다.
이번 훈령 개정은 최근 김치와 파오차이가 분명히 다른 음식이기 때문에 중국어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어난 것에 따른 조치다. 김치에 대한 중국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파오차이가 관용적으로 쓰이면서 문체부가 이를 훈령에 적용했지만, 중국 바이두 백과사전 등에서 김치를 중국의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는 등의 문화공정 상황 속에서 올바르게 의미를 바로 잡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방탄소년단이 지난달 네이버 V라이브 웹 예능 '달려라 방탄'에서 백종원과 김치를 만들던 중 '파오차이'라는 자막이 달려 논란은 더욱 커졌다. 당시 네이버 측은 문체부 훈령에 따른 번역이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개정된 훈령이 민간 부문에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문체부 측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하는 누리집, 홍보 자료 등에 적용된다”며 “민간 부문에는 적용을 강제하지 않으며 관련 업계에서는 훈령을 참고해 사업 환경에 따라 번역ㆍ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체부는 "우리의 김치와 중국의 파오차이를 구분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훈령에 신치라는 표기를 명시했다. 한-중 문화교류의 해(2021~2022)를 기념해 양국의 음식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고유문화에 대한 논의와 교류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농식품부는 "훈령 개정을 통해 김치와 파오차이 간 혼란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김치 고유의 표기를 사용해 김치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문체부는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김치를 판매하는 경우에 김치를 신치로 단독 표기할 수는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중국 식품안전국가표준(GB) 등 현지 법령상 중국 내에서 유통이나 판매되는 식품에는 제품의 '진실 속성'(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명칭)을 반영하는 표기를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농식품부는 수출기업 등을 대상으로 신치 용어의 사용 가능 범위에 대해 안내할 계획이다.
더불어 문체부는 이번 훈령 개정을 통해 음역(한국어의 발음을 그대로 살려서 하는 번역) 범위도 확대했다. 순대나 선지를 그 뜻을 살려 'blood sausage', 'blood cake'로 번역하면 외국인에게 혐오감이나 거부감을 준다는 우려를 반영해 소리 나는 대로 'sundae', 'seonji'로 표기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