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이자 연예 기획사인 판타지오는 주식을 모르는 K팝 팬들에게도 친숙한 회사다. 워너원 옹성우, 아이오아이 최유정 등 인기그룹 아이돌 가수의 소속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 올해만 벌점 10점을 부과받은 ‘불성실공시법인’이다. 벌점 5점을 추가로 받으면 거래가 정지되고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받게 된다.
금융당국이 부실 공시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공시위반 사례는 감소하지 않고 있다. 공시 지연, 공시 변경 등 사소한 실수가 대부분이지만 일부 기업은 상습적으로 공시규정을 위반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21일 한국거래소 전자공시를 분석한 결과 연초 이후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건수는 72건(중복 지정 포함)이다. 이 속도라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2020년(153건)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금융당국은 공시위반 제재금을 높이고, 누적 벌점 15점 이상이면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할 수 있는 ‘상폐 룰’을 도입했다. 하지만 위반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7년 지정 건수는 93건으로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벌점을 받아 거래소로부터 집중 관리를 받고 있는 상장사는 85곳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는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받고 있지만, 더 주의해야 할 곳은 벌점이 10점 이상 누적돼 거래정지 ‘문턱’에 있는 상장사들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제넨바이오(12점), 연이비앤티(11.5점), 이디티(10.5점), 판타지오(10점), 디엔에이링크(10점)는 최근 1년간 벌점을 10점 이상 받았다.
판타지오는 공시 번복과 공시 변경 규정 위반으로 지난 3월 7점, 4월에는 공시 불이행으로 3점을 받았다.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담보 계약을 체결일보다 3개월 늦게 공시했고, 전환사채 발행 결정을 철회하는 등 다수의 공시규정을 어겼다고 코스닥시장본부는 판단했다.
제넨바이오는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해 ‘공시 번복’ 규정을 위반했다.
투자자들의 피해는 공급 계약 공시를 위반할 때 많이 발생한다. 호재라고 판단해 주식을 매수했는데, 허위공시로 판명나 주가가 급락하는 경우다. 누적 벌점 9.5점이 쌓인 엘아이에스가 대표적이다. 엘아이에스는 지난해 12월 9820억원어치 마스크를 태국 더블에이그룹에 수출한다고 공시했다. 이에 힘입어 7000원대였던 주가가 1만3000원대까지 올랐다. 하지만 공시 1주일 뒤 계약금이 미입금됐다고 발표하면서 주가는 4000원대까지 폭락했다. 공시를 보고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해를 봤다.
‘노래의 성지’로 불렸던 소리바다도 공급 계약을 취소한 전력이 있다. 마스크 제조사로 변신한 소리바다는 작년 4월 590억원 규모의 마스크 공급 계약 체결을 공시했는데, 이후 공시를 10번 수정하다 올해 4월이 돼서야 공급 계약 취소 사실을 공시했다. 소리바다는 올해만 벌점 12점을 받았다. 현재 누적 벌점이 21.8점이고 지난 5월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거래가 정지됐다.
소액 주주들 사이에서는 피해 규모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스크 공시로 물의를 빚은 엘아이에스가 제재금으로 3800만원을 부과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업계는 소수의 사례로 처벌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 공시 규정을 몰라 실수로 위반하는 상장사도 많다는 이유를 든다. 거래소는 고의성 여부, 과실 경중, 사안 중대성 등을 고려해 벌점을 0~10점 부과한다.
한편 판타지오 관계자는 “올해 받은 벌점은 이전 대주주와 경영진의 과실로 발생한 것”이라며 “현 대주주와 경영진은 이 같은 공시위반이 재발하지 않도록 내부시스템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