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칼럼에서는 최근 3년 동안 ‘작가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을 풀어내고자 한다. ‘작품 활동’이 아니라 ‘작가 활동’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활동이 단순히 글을 창작하는 데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강연이나 자문, 기타 행사까지 좀 더 넓은 활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1년에 첫 번째 책을 출간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회사원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작가’라는 이름으로 프리랜서업계에서 활동한 것은 3년 전부터다.
그중에서 내가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업계의 관행’과 관련한 것이다. 관행(慣行)은 말 그대로 ‘오랜 기간 똑같이 하던 것들’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내가 지난 3년간 느낀 관행은 사전적 의미를 넘어, 불공정한 갑질과 불합리적인 부분을 덮기 위한 구실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업계는 이런 관행에 너무도 관대하다는 것을 느낀다. 관행이라는 악습에 이슈를 제기할라치면 ‘뭐 이 정도를 가지고’ 혹은 ‘왜 나한테만 그래?’라고 눈을 흘기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강연·자문·출판 등의 활동에서 적어 내려갈 내용들을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우리 사회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 활동 중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것은 ‘강연’먼저, 여러 가지 ‘작가 활동’ 중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 활동인 ‘강연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작가 중에서는 더러 이런 강연을 힘겨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개인적으로 강연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강연을 좋아한다고 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시도 때도 없이 울려오는 강연 의뢰 전화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다.
지난 3년간 모르는 번호로 불쑥 전화가 걸려온 적이 대충 어림잡아도 1000통이 넘는다. 대부분은 강연 의뢰 전화인데, ‘지금은 통화가 어려우니 메시지나 메일로 연락을 달라’고 정중히 요구해도 “두 번 연락하기 싫으니, 지금 강연 가능 여부를 알려달라”고 대뜸 들이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도대체 누구에게서 내 개인 연락처를 받아 연락했느냐?”고 물어보면 “(누군지 알려줄 수는 없지만) 아는 사람에게 받았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던지라 이제는 그런 질문은 포기한 지 오래다. 이 바닥은 개인정보보호법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나와 한마디 사전 동의 없이, 내 사진과 프로필을 자사 홈페이지의 ‘강사 소개란’에 올려놓은 강의 업체도 있다. 어차피 나는 어디서 연락이 오든 최종적인 강연 조건을 보고 승낙 혹은 거절 여부만 결정하면 되니까 상관없지만, (나와 한 번도 관계를 맺은 적이 없으면서도) 내 정보를 마음대로 기업 강연 시장에 올려놓고 거래하는 것이 마치 나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게 이쪽의 관행인 것 같다. 지금까지 나에게 강사 소개 자료에 올려도 되냐고 사전에 문의해준 (고마운) 강연 업체는 안타깝게도 3년 동안 단 한 곳에 불과했다.
언젠가는 강연 외주 업체가 자기들 멋대로 내 일정을 조정해서 강연 확정까지 한 다음에 연락한 적도 있다. 이게 뭐냐고 따지니, 그제야 직접 연락해서 해결하라고 나에게 고객사 연락처를 넘겨줬다. ‘아, 돈 벌 기회를 줬는데도 고마워하기는커녕…’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중요한 ‘강연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강연료를 얼마 이상 달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저는 반드시 얼마 이상을 주셔야 강연이 가능합니다”고 선을 그어 말하면 관리 차원에서야 편할 수는 있겠지만,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 단체가 제한적인 강연료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꼭 강연료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해당 행사의 중요도(혹은 신선도)와 기존 일정과의 연계성 그리고 이동 거리에 따른 소요 시간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진행하고 있다.
단지 관련 강연료 문의가 워낙 많은지라 참조차 전년에 최종적으로 진행한 강연의 강연료 통계만 알려드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기준 때문에 어떤 날은 강연료를 많이 받은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때는 무료로 강연한 적도 있다. 그런데 간혹 강연을 다니면서 가끔 나에 대한 소문을 역으로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교수도 아닌 주제에 강의료로 얼마 이상 요구하더라”“작가가 돈을 너무 따진다”와 같은 것들이다. 내 의지에 관계없이 떠도는 소문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중에 ‘작가는 돈을 따지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대체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느냐?”고 따져 묻고 싶다. 작가는 자본주의와 관계없이 영원히 흙을 파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기업·정부 자문하며 느낀 건 ‘용두사미’가 많다는 것다음은 기업과 정부 조직에 대한 자문 활동을 하면서 느낀 생각이다. 최근 강연 활동 외에 정부 기관이나 기업체 등에서 조직 문화 개선 혹은 혁신과 관련한 자문 혹은 대담 등의 활동도 다수 해왔다.
하지만 혁신 관련 자문 활동을 하면서 미리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조직 혁신 활동은 시작은 화려하지만 끝은 미비한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혁신(革新)은 한자 단어 그대로 가죽을 벗기는 아픔이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 주위의 많은 조직 활동은 단순 개선 활동에 명목상 보기 좋은 혁신이라는 이름만 붙여놓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조직 혁신 자문 활동이 허울 좋은 몇 마디 말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실제로 최고경영자 앞에서 내 시간을 잡아먹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겠다고 약속했으며, 대신 관련한 기업의 ‘익명 게시판 글’ 같은 내부 데이터를 요청했다.
그런데 회장 앞에서 분명 모든 부분을 투명하게 제공하겠다고 장담하던 실무자들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 재차 요청했는데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었다는 연락만 있을 뿐, 아무런 조치 사항이 없다. 그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작가님. 아시잖아요. 저희도 최고경영자가 톱다운으로 찍어 내려서 어쩔 수 없이 이 활동을 하는 거예요. 그냥 정기 미팅만 참석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이다. 아. 원래 이 바닥이 이렇다는 걸 내가 잠시 망각했던 것일까? 내가 주업이 아닌 활동을 위해 죽기 살기로 덤빌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결국 이 자문 활동은 중간에 자진해서 그만뒀다.
언젠가 한 번은 정부 중앙부처에서 주관하는 혁신 관련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정부 조직의 불합리한 관행을 버리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회의나 보고 등에서 혁신과 개선을 이뤄야 한다는 좋은 취지의 행사였다. 다양한 중앙부처의 혁신담당관을 비롯해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그리고 관련된 연구소의 연구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정부부처의 조직문화가 꽉 막혀 있다는 통상적인 인식이 꼭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정도로 좋은 시도였고, 전체 회의도 큰 문제 없이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조금 다른 곳에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나를 포함해 여러 곳에서 모인 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제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마지막에 해당 행사에서 가장 높은 직급의 고위공무원이 등장하자 모든 회의 참석자들이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영접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던 것은 나 혼자였다. ‘아니, 공무원이 아닌 사람들도 일어나서 90도로 인사를 하고 있는 거지? 여기 혁신을 이야기하기 위해 모인 자리 아니었나?’라는 의문을 품고 있던 것도 오로지 나 혼자였을까?
물론 어렵게 해당 행사를 준비하고, 바쁜 시간을 내주신 분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거창하게 회의·보고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혁신한다고 토론에 나서기 이전에 관료 사회에 윗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관행’을 바꿔나가는 것이 조금 더 쉬운 일이 아닐까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출판 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관행출판 시장에 존재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간단히 한마디만 하고 지나가고자 한다. K출판계의 고질적 관행인 ‘인세 미지급’ ‘불투명한 유통구조’ 등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신문 한 면으로는 부족할 테니, 새롭게 등장한 관행 하나 정도만 이야기하고 싶다.
2년 전, 오프라인에서 만난 한 독자님께서 갑자기 나에게 양해를 구했던 일이 있었다. “작가님. 저는 작가님 책이 ‘구독형 서비스’에 등록돼 있기에 다운로드해 봤는데요. 저는 좋았지만 작가님에게 손해가 되는 건 아닌가요? 죄송해서요”라고 말이다.
다시 놀라운 사실이지만, 나는 내 책이 구독형 독서 플랫폼에 올라와 있는지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구독 서비스 중에서 몇몇 곳에는 내 콘텐츠를 매절계약 형태로 넘겨 버렸다는 사실 또한 나중에야 알았다.
기존의 출판 계약에선 오프라인 도서에 대한 출판권과 함께 e북과 같은 디지털 저작물에 대한 전송권을 위임하고 있다. 하지만 새롭게 생겨난 ‘구독형 독서 플랫폼’은 기존 및 e북 판매와 다른 형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기존의 계약과 다른 형태로 진행이 돼야 할 것이다. ‘무제한 다운로드’가 가능한 서비스에 들어가기 전에 최소한 저작권자인 저자의 의견을 묻고 진행해야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출판사가 이렇게 말하면 끝이다. “예전에 작성한 계약서 못 보셨어요?”라고 말이다.
좋다. 전송권자인 출판사가 저작권자 동의 없이 무제한 구독형 플랫폼에 콘텐츠를 등록하는 것이 계약서상 하등의 문제가 없다고 치자. 하지만 이렇게 힘이 없는 저자들도 자신의 콘텐츠가 얼마나 팔렸는지(다운로드됐는지)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는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콘텐츠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문의했다. 그런데 이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엥? 이유를 물어보니 출판사와 유통사 간에 맺은 계약서에 따라서 이를 알려줄 의무가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K출판은 본래 전산 시스템의 미비와 위탁·임치 거래 등의 문제로 오프라인 매장의 책 판매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어떻게 소위 4차 산업혁명이란 것이 진행되는 지금의 이 나라에서 저작권자가 온라인상에서 e북이 얼마나 전송됐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단 말인가?
저작권자가 이런 서비스에서 자신의 저작권 콘텐츠에 대한 판매 현황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법적 소송을 통해 법원에 사실 조회 신청을 하는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나라의 몇 명이나 되는 작가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양한 위험을 무릅쓰고 소송을 진행할 수 있을까? 극악의 관행은 ‘줘야 할 돈 떼먹는 것’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 시장바닥에 존재하는 극악의 관행 한 가지를 소개하고 이 칼럼을 마치고자 한다. 이 극악의 관행을 소개하기 위해, 약 20년 전 영화 한 편을 소환하겠다. 그 영화는 2002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이다.
영화 초반, 연극계에서 제법 알려진 배우이자 극장 주인공인 경수(김상경 분)가 한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 영화는 속된 말로 망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흥행에 실패한다. 이 여파로 그는 구두로 약속돼 있던 차기 작품에 대한 출연 계약도 파기당한다. 그제서야 경수는 기존 영화 출연료(약속된 러닝 개런티)를 받기 위해 영화사를 찾아간다. 그 러닝 개런티가 얼마냐 하면 단돈 100만원이다. 그 100만원 받고 나오면서, 경수는 그의 선배이자 감독인 한 사람(안길강 분)과 다음과 같은 논쟁을 벌인다.
경수: 이거 나 받을 거 받는 거야.
감독: 아. 그게 얼마나 된다고?
회사가 너 얼마나 손해 봤는지 모르니?
(중략)
경수야. 우리 사람 되는 거 힘들어.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말고 살자 어?
그런데 우리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의 ‘새로운 세상’의 기준에서 영화사와 명백하게 계약돼 있는 소액의 성과급이라는 권리를 찾기 위해 영화사를 뒤늦게 찾은 연기자가 괴물일까? 아니면 그에게 그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주면서, 이걸 받아가는 니가 인간이냐?라는 식으로 말하는 선배 감독이 괴물일까? 놀라운 것은 2002년 영화 개봉 당시에는, ‘돈을 받으러 온 경수가 괴물이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극악의 관행은 바로 이 ‘줘야 할 돈을 떼먹는 것’이다. 외국계나 대기업 등에 다녀온 나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월급이 밀린 경험이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내 친구 한 명은 여전히 몇 달째 받아야 할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회사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씁쓸하게 말하는 이 친구의 말이 마냥 선하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한 출판사 담당자로부터 전화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님. 이 돈 꼭 받으셔야겠어요?”라고 말이다. 난 단지 계약서에 쓰여 있는 그대로 이행해주기를 요청했을 뿐이다.
자. 이제 나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위의 영화 대사를 그대로 되돌려 들려주고자 한다. “이봐. 우리 사람 되는 거 힘들어.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말고 살자. 어?”
■ 임홍택은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동국대에서 영문학·경영학을 전공했고, KAIST 경영대학에서 정보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입사한 CJ그룹에서 12년간 일했다. CJ인재원 신입사원 입문 교육과 CJ제일제당 소비자팀 VOC(Voice of Customer) 분석 업무,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했다. 빨간색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전국빨간차연합회(전빨련) 회장을 맡고 있으며 외교부 혁신이행 외부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포스퀘어 스토리》(2011년) , 《90년생이 온다》(2018년), 《관종의 조건》(2020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