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상당폭 치솟은 집값이 조정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전국 집값이 20%가량 하락하는 최악의 경우 가계 살림살이는 물론 실물경제도 휘청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로 내집 마련에 나선 가계가 특히 직격탄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은 2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택가격 변동이 실물·물가에 미치는 영향의 비대칭성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은은 부동산 가격 등락이 '부의 효과'와 '차입 효과' 경로를 거쳐 민간소비·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부의 효과는 가계가 보유한 집값이 뛰면 자산이 늘고, 그만큼 소비를 늘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가격이 떨어지면 자산이 줄고 지갑을 닫게 된다. 차입 효과는 가계가 보유한 집값이 뛰면 차입 여력이 늘어나면서 씀씀이를 늘리는 반면 집값이 떨어지면 차입 여력과 씀씀이가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한은은 한국의 경우 집값이 뛰어도 소비 증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지면 씀씀이가 뚜렷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차입금이 많을수록 이 같은 씀씀이 감소 효과는 두드러졌다.
한은은 이 같은 소비감소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우선 집값 하락율을 산출했다. KB국민은행의 전국 실질 주택매매가격지수의 1986년 1분기~2021년 1분기 등락률(전년 동기 대비 기준)을 우선 계산했다. 이 기간에 실질 매매가격지수 상승률(명목 매매가격지수 상승률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뺀 수치)이 가장 낮았던 시점은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 2분기와 3분기로 각각 17.7%로 집계됐다.
한은은 이를 바탕으로 집값이 20% 빠질 경우 민간소비·고용자수가 크게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주택을 사들이기 위해 빚을 많이 낼수록 이 같은 타격이 컸다고 분석했다. 은행이 집값의 75% 만큼을 대출해준 경우(주택담보대출·LTV 비율 75%) 집값이 20%가 하락하면 민간소비의 연간 증가율은 -4% 수준으로 집계됐다. 연간 고용자 수도 4%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처럼 빚투·영끌의 영향으로 가계부채가 늘어난 상황에서 집값이 떨어지면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뜻이다.
한은은 "집값이 지금처럼 높은 상승세를 지속하면 그만큼 주택가격 조정 가능성이 높아지고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가계부채가 쌓이는 상황에서 대내외 충격에 따른 집값 조정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지속 성장을 위해 가계·기업의 차입금을 안정적 수준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금융불균형이 누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준금리를 올려서 가계·기업의 차입금 증가속도를 늦추고, 집값 과열을 막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