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수주호황으로 랠리를 펼쳤던 조선주들이 힘을 잃고 있다. 수주 물량이 실적에 반영되기 전인데다, 원자재 가격 부담까지 이어지고 있어서다. 실적을 갉아먹을 요인이 잇따라 등장한 가운데, 향후 주가는 선가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16일까지 한국조선해양 주가는 5.97%가, 대우조선해양은 6.98%가, 삼성중공업은 1.94%가 각각 하락했다.
재무구조 악화로 무상감자 후 유상증자에 나선 삼성중공업을 제외한 주요 조선사들 주가 흐름은 지난 5월11일 고점을 찍은 뒤 조정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실적 우려 때문이다. 수주한 선박 발주 물량은 1~2년 기간 동안 설계 과정을 거쳐 실제 작업장에서 철판을 자르기 시작해야 실적에 반영된다. 올해 실적은 부진했던 작년 이전의 수주 성적을 바탕으로 나오게 된다.
후판 값 인상 반영한 공사손실충당금에 실적 쇼크 우려추가로 실적을 악화시킬 요인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근 선박 건조 비용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철강재 가격 상승이다. 이로 인해 조선사들의 ‘어닝 쇼크(시장 전망치보다 현저히 부진한 실적 발표)’가 우려되고 있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집계된 최근 3개월 동안 나온 한국조선해양에 대한 증권사들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 평균(컨센서스)은 1307억원 손실이다. 집계 기간을 1개월로 줄이면 영업손실 컨센서스 규모가 3385억원으로 불어난다. 최근에 발간되는 보고서들이 실적 추정치를 낮추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영업손실 컨센서스가 3개월 동안 발간된 보고서들의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176억원 손실이지만 1개월 동안 발간된 보고서들의 컨센서스는 790억원 손실로 나타났다. 손실 규모가 4배 넘게 증가한다는 분석이다. 같은 조건으로 삼성중공업의 영업손실 컨센서스도 1137억원에서 2103억원으로 늘어난다.
증권사들이 실적 추정치를 낮추는 배경은 철강재 가격의 상승이다. 조선·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진행되는 하반기 후판 공급 가격 협상에서 철강사들은 톤(t)당 115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반기 공급 가격은 톤당 70만원대 초반대였다. 업계 안팎은 톤당 100만원 내외에서 합의가 이뤄진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후판 가격이 대폭 오르면 조선사들은 ‘공사손실충당금’이라는 장부상 비용을 반영해야 한다. 선박을 수주할 때는 당시 후판 가격인 톤당 70만원대를 바탕으로 발주사와 계약금액을 협상했겠지만, 후판 가격이 톤당 30만원 가량 오르니 추가 비용 요인을 미리 반영하는 것이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철광석 가격 상승으로 (철강사들이 후판 공급 가격을) 상반기 공급 가격 대비 약 60% 인상할 것”이라며 “올해 신조선가도 약 40% 가량 상승했지만, 포스코 기준 후판 유통 가격은 100% 가량 올랐다”고 말했다.
“이미 수주 목표치 채운 조선사들, 선가 인상 가능”이처럼 악조건이 넘치고 있지만, 증권가에서는 조선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선박 발주 시장은 여전히 호황을 보이는 데다, 향후 수주하는 물량의 선가에 후판 가격 상승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고 봐서다. 앞선 수주로 조선사들이 일감을 넉넉히 확보해 급한 상황이 아니기에, 앞으로 주문을 받을 때는 제값을 요구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만약 후판 가격이 올라간 만큼 선가가 상승한다면 이는 마진 악화 요인이 아닌 외형 확대 요인이 된다”며 “2003~2007년 (조선업) 슈퍼 사이클(장기호황)의 초입 구간에서도 후판 가격 상승이 선가 상승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수주 모멘텀도 지속될 전망이다. 유승우 연구원은 “해상 운임 상승으로 해운사들의 현금 여력이 풍부해졌다는 점에서 자본투자(Capex) 집행 유인이 커졌다”며 “작년에 발주될 예정이었다가 이연된 물량들, 올해 예정 발주 물량들에 더해 내년 물량의 조기 발주까지 가능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조선 빅3이 올해 수주 목표치를 거의 채운 상태다. 늦게 발주하면 선박을 제 때 못 받을 선사들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 18일 기준 한국조선해양의 올해 수주 실적은 152억달러로 연초 세운 목표치 149억달러를 초과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올해 수주 목표 달성률도 각각 80%와 71%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