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이 결국 무산됐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회담 형식과 내용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결과다.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부적절 발언’ 파문도 막판 돌발 변수로 작용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한·일 관계 개선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靑 “정상회담 협의, 성과로서 미흡”
청와대는 19일 “문 대통령은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방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한·일 양국 정부는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양국 간 역사 현안에 대한 진전과 미래지향적 협력 방향에 대해 의미있는 협의를 나눴다”며 “양측 간 협의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돼 상당한 이해의 접근은 있었지만, 정상회담의 성과로 삼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며, 그 밖의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와 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쿄올림픽은 세계인의 평화 축제인 만큼 일본이 올림픽을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과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맞춰 정상회담을 열기로 방침을 굳혔다”며 “일본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소마 공사를 경질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소마 공사에 대한 공식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자 청와대는 즉각 해당 보도와 관련해 반박성 브리핑을 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서면 브리핑에서 “현재 양국이 협의하고 있으나 여전히 성과로서 미흡하다”며 “막판에 대두된 회담의 장애에 대해 아직 일본 측으로부터 납득할 만한 조치가 없는 상황이어서 방일과 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밝혔다. 소마 공사 부적절 발언 ‘막판 쐐기’한국과 일본 정부는 그동안 정상회담 개최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양국은 지난달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회의에서 약식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으나 일본 측이 한국의 독도 방어훈련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후 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참석과 관련해서도 한국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와 위안부 소송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일본이 짧고 의례적인 회담으로 대처할 것이란 일본 정부발(發) 현지 언론 보도가 줄지어 나오면서 한국 정부가 반발하는 등 갈등이 이어졌다. 교도통신은 스가 총리가 각국 중요 인물과 만나야 하기 때문에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15분에 그칠 것이라는 일본 정부발 발언을 보도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성과가 예견돼야 정상회담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맞섰다. 이런 와중에 지난 16일 소마 공사의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적절 발언이 알려지면서 양국 정상회담 개최에 결정적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원해진 한·일 관계 개선문 대통령은 당초 정상회담 개최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정상회담 무산 발표 전 언론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쉬운 길보다는 더 좋은 길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방일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따르는 것은 쉬운 선택이지만 대통령으로서는 또 다른 외로운 길을 가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면서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달 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방일 찬반을 조사한 결과 ‘반대한다’는 응답이 60.2%였다. 여권 유력 대권주자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이날 청와대의 정상회담 무산 발표 전 SNS를 통해 “한·일 정상회담에 기대를 갖는 것은 무의미하고, 대통령의 방일은 이제 접을 때가 됐다”고 밝혔다. 일본 내에서는 9월 총선을 앞두고 보수·우익 여론에 예민한 스가 총리가 회담 개최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 개선은 이번 정부에서는 요원하다고 분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 모두 정상회담 무산이 자신의 지지율에 손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한·일 관계가 상당 기간 교착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반일로 일관하다가 다음 정부에 관계 개선 과제를 떠넘긴 정부로 남지 않을까 싶다”고 관측했다.
임도원/송영찬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