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씀씀이, 인플레 자극 안한다"는 한은…경제학계 "근거 약하다" [김익환의 BOK워치]

입력 2021-07-19 12:02
수정 2021-07-19 15:42
한국은행은 정부·여당의 재정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불어난 정부 씀씀이가 다양한 경로로 물가를 밀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경제학계도 이에 대해 재반박에 나서면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한은은 19일 이 같은 내용의 '최근 인플레이션 논쟁의 이론적 배경과 우리경제 내 현실화 가능성 점검' 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통화량 증가(화폐수량설) ▲수요압력(신케인지언 접근법) ▲정부 재정확대(재정 인플레이션) 등이 인플레이션을 부르는 변수로 꼽았다.

재정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씀씀이를 늘리는 만큼 여러 경로를 거쳐 물가가 뛸 것이라는 이론이다. 정부가 빚의 실질 부담을 낮추기 위해 물가 상승을 용인할 것이라는 기대가 퍼지면서,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한다는 논리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심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논문 'A Simple Model for Study of the Determination of the Price
Level and the Interaction of Monetary and Fiscal Policy')가 설계한 이론이다.

하지만 한은은 최근 편성을 추진하는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경기부양책의 경우 물가를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은은 한국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부터 코로나 위기 직전까지 실증 분석결과 재정적 인플레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추경을 비롯한 경기부양이 재정 인플레이션으로 직결될 우려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한은은 "한국과 선진국 중앙은행이 능동적으로 통화정책을 펼치면서 인플레이션을 엄격하게 관리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실질 부채 부담을 낮추려는 정부가 물가 인상을 용인해도, 중앙은행이 지켜보지 않고 물가 안정 정책을 펼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론도 많다. 추경으로 재난지원금이 풀리면 그만큼 가계의 씀씀이를 늘리고 물가의 수요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부터 나온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씀씀이를 억제한 가계의 여윳돈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여기에 재난지원금까지 풀리면 물가 상승압력이 보다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한은이 근거로 제시한 실증자료가 금융위기부터 코로나 위기 직전까지 분석을 바탕으로 한 만큼 한계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정부의 재정 씀씀이와 재정정책이 코로나 위기 직후 중대한 변화를 맞이 했다. 과거 자료로 현재의 재정 인플레이션 여부를 입증하기는 근거가 미약하다는 뜻이다.

심스 교수의 제자인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17년부터 한국의 재정 정책이 변화를 보이고 있다"며 "정부가 씀씀이를 대폭 풀면서 재정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은의 통화정책은 경기 대응을 우선으로 하고 물가 대응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며 "한국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흐름을 보면 재정 인플레이션의 우려를 배제하기 어려운 형국"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재난지원금발 국채가 시장에 풀리고, 한은이 직간접적으로 국채 매입에 나설 경우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은은 연내 국채 시장 상황에 따라 국채 매입에 나설 가능성을 열어뒀다. 경우에 따라서 '부채의 화폐화'에 준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한은은 코로나19로 짓눌린 소비가 보복소비로 이어지면서 물가가 치솟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기 회복 기대가 높아지는 데다 백신 접종 속도가 빨라지는 등 불확실성이 걷히면서 가계가 지갑을 열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원자재값과 해상 운송료가 고공행진하는 것도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6월 수입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14% 상승했다. 치솟는 수입물가가 소비자물가를 밀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한은은 원자재가격이 10% 뛰면 소비자물가는 최대 0.2% 오른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유동성 및 기대인플레이션 측면에서의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높일 수 있다"며 "경기회복세를 꺾지 않는 수준에서 유동성의 과도한 확대를 방지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한 주장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