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마음의 방역이 필요한 시기

입력 2021-07-18 17:44
수정 2021-07-19 00:11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마음 맞는 사람을 원하는 시간에 만나본 지 참 오래된 듯하다. 추억을 함께한 친구들과 수다를 떨어본 게 언제더라? 동호회, 동창회, 가족 모임, 회식 등 삶의 윤활유 역할을 했던 모임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데 인간을 규정하는 사회생활이 어려워지자 ‘코로나 블루(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구촌 전체에 우울증 경보가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코로나 이전부터 한국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4~2018년 중 ‘공황장애’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5년간 연평균 14.3%씩 늘어났다. 2018년에는 거의 16만 명이나 치료를 받았다. 연령대별로는 40대가 가장 많았고, 최근에는 10대와 20대의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 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지난달 13~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35% 정도의 청소년을 우울 위험군으로 분류했다. 유명순 서울대 교수팀의 ‘한국사회 울분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만성적인 울분을 느끼는 사람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올해 2월 기준 58%의 국민이 울분 상태라고 한다. 국민 절반 이상이 화(火)가 나 있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는 정신건강 악화가 오랜 기간 누적된 현상이고, 특정 집단이 아닌 국민 모두가 감염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는 이런 현상을 강화시킨 한 요인이지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인은 뭘까? 일반적으로 사회의 빠른 변화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 동물’ 인간에게 생각과 현실 간 거리가 멀어지게 되자,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부적응이 나타난 결과다. 인생의 황금기에 해당하는 40대는 경제적 위기 등으로 가장의 역할에 대한 중압감, 청년층은 취업과 결혼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결국 빠른 사회 변화로 위치 감각을 상실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미래가 다가오는 데 따른 불안감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사회를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면 본인이 적응해야 한다. 빠른 양약(洋藥)적 처방이 없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조금씩 바꾸는 한방(韓方)적 치료를 함께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대인관계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늘 겸손해하는지? 경청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많이 베풀고 있는지? 등 삶의 기초를 다시 살펴야 한다.

다혈질인 한국인에게만 있는 질병이 화병(火病)이다. 그런데 역사상 가장 큰 대전환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으니 정신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코로나가 물러가도 정신건강 회복은 쉽지 않을 듯하다. 다시 주변을 살펴보면서 삶의 방식을 점검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