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선생님·구조대원…'음성 AI'의 착한 진화

입력 2021-07-18 17:58
수정 2021-07-19 10:03
“아리아, 살려줘!”

지난달 충북 영동군 매곡면 주민 전모씨(79)는 갑작스러운 고열과 복통에 시달렸다. 고령 치매환자인 전씨에게 이 통증은 죽음의 공포로 다가왔다. 긴급한 상황에서 의지한 것은 영동군이 치매 재활훈련을 위해 배포한 SK텔레콤의 인공지능(AI) 스피커였다. 영동군 보건소 관계자는 “다행히 적시에 구조돼 회복 중”이라며 “활용법을 잘 배운 어르신들이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다.

음성 AI 서비스가 달라지고 있다. 인식 오류가 잦아 외면받던 과거와 달리,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높였다. 119 구조대원부터 가정교사, 재활 도우미까지 영역을 늘려가며 생활 속에 스며드는 추세다. 긴급 구조, 대화로 ‘척척’ SK텔레콤은 'AI 돌봄 서비스'를 도입한 기관 및 지방자치단체가 66곳을 넘었다고 18일 밝혔다. AI 돌봄 서비스는 SK텔레콤과 ADT캡스, SK그룹의 재단법인 행복커넥트가 운영하는 스피커 기반 음성 AI 서비스다. 음성-문자 상호 변환 기술로 대상자의 행동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사람의 언어를 컴퓨터에 인식시키는 자연어처리(NLP) 학습을 통해 ‘진짜 사람 같은’ 응답을 해낸다.

기저질환 관리와 말동무 역할도 하지만 긴급 SOS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정도로 진화했다. 지난 5월까지 SK텔레콤과 소방청이 집계한 긴급 SOS 호출 중 구조로 이어진 신고는 100건에 달했다. 야간과 새벽 접수 비중이 크다. 독거노인이 많은 지자체에서 이용이 활발하다.

한컴로보틱스는 영어, 태권도 등을 가르칠 수 있는 아동용 AI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AI 가정교사’ 구현을 목표로 한다. 몸통에 장착된 스피커를 통해 일상 대화를 나누고, 언어 교육도 담당한다.

한컴로보틱스는 연내 음성인식이 더 고도화된 토키2 출시를 예고했다. 영어교육기업 윤선생, 태권도 관련 AI 학습 데이터를 보유한 AI태권도와 협력하고 있다. 조만간 유치원 등에서 50대를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코로나19 백신 효과도 추적 의료 분야에서도 음성 AI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속에서 의료 인력을 돕는 콜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네이버는 최근 ‘클로바 케어콜’ 보급에 주력하고 있다.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3시, AI가 밀접 접촉자를 대상으로 발열 여부 등 증세를 확인한다.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 여부를 AI가 전화로 확인하는 기능도 갖췄다.

카카오는 AI 스피커 기반의 재활치료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이화여대 조선대 등과 청각장애아 등의 언어 발달과 소통 개선에 음성 AI가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분석해 공개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들이 음성 AI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등장한 2016년부터다. 최근의 음성 AI 서비스는 이전 세대와는 양상이 다르다. 정확도가 높으면서 타깃층이 뚜렷하다. 이지형 성균관대 AI학과장은 “그동안 긴급구조 같은 킬러 콘텐츠 서비스가 불완전해 기술 개발이 더뎠다”며 “서비스가 지속되면서 데이터가 충분해진 만큼 음성 AI의 활약 범위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5100억원이던 국내 음성 AI 시장 규모는 2025년 2조49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