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감정 기복,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호르몬 분비 감소…. 여성 갱년기의 대표적 증상이지만,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남성도 많다. 여성처럼 남성도 나이가 들면서 호르몬이 부족해지고 갱년기를 맞는다. 갱년기가 되면 기분이 수시로 변하고 짜증과 분노가 잦아진다. 심하면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한다. 신체적으로도 근육량과 골밀도가 줄어들고 성욕이 감소한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여성 갱년기가 폐경과 함께 급격히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남성 갱년기는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갱년기를 어쩔 수 없는 노화 현상으로 보지 말고, 질병으로 인식해 적극적으로 치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치료의 목표는 우울감 등의 증상을 완화해 인생의 활력을 되찾는 것이다. 남성 갱년기의 증상은 무엇인지, 어떻게 진단하는지, 치료법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근육량 줄고 복부비만 생기면 의심
갱년기(更年期)는 말 그대로 나이가 들며 몸이 변화하는 시기다. 나이가 들면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정상 수치 밑으로 떨어져 신체적·정신적 변화가 뒤따른다. 만성 피로, 무기력, 집중력 및 기억력 저하, 성욕 감퇴 등이 남성 갱년기의 대표적 증상이다.
갑자기 짜증이나 분노가 솟구치는 등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것도 갱년기 증상에 해당된다. 신체적 변화도 있다. 근육량이 줄어들면서 배가 나오거나 팔다리가 가늘어진다. 머리카락과 체모가 예전보다 얇아지고 빠지기도 한다.
남성 갱년기는 증상이 일반적인 노화와 비슷해 알아차리기 힘들다. 여성이 폐경을 기준으로 갱년기를 특정하는 것과 달리 남성은 갱년기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는 까닭에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대가 제시한 ‘남성 갱년기 자가진단법’에 따르면 최근 성욕이 갑자기 줄거나 발기력이 감소하는 등 신체적 변화가 생기면 갱년기일 가능성이 크다. 피로감, 무기력, 근력 및 지구력 감소, 잦은 졸음, 업무능력 저하 등이 동시에 나타나면 갱년기를 의심해봐야 한다.
혈액 검사를 통해 남성 갱년기를 진단할 수 있다.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정상 범위는 1dL(데시리터)당 300~1000ng(나노그램)인데, 40대부터 테스토스테론이 매년 약 1%씩 감소한다. 300ng 이하로 떨어지면 남성 갱년기 기준에 해당한다. 여기에 성욕 저하, 발기부전 등 남성호르몬 결핍으로 인한 증상이 동반되면 치료가 필요한 단계로 본다. 남성호르몬 수치는 같은 날에도 시간에 따라 변화가 있기 때문에 오전 7~11시에 검사를 받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갱년기 방치하면 동맥경화 위험
남성 갱년기는 호르몬 감소가 주요인이지만 음주 흡연 등 생활습관과 스트레스도 영향을 준다. 당뇨 고혈압 골다공증 등 기저질환이 있으면 남성호르몬이 줄어들면서 갱년기 증상이 다른 사람보다 심해질 수 있다. 특히 지방에 있는 아로마타제라는 효소는 테스토스테론을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체중 조절을 잘 하지 않으면 갱년기가 더 빨리 올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대한남성과학회와 대한남성갱년기학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40대 남성 4명 중 1명(26.9%)이 남성 갱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는 이보다 높은 31%였다.
남성 갱년기를 꼭 치료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갱년기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질환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테스토스테론은 신체 대사를 도와 내장지방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고, 골밀도를 증가시킨다. 남성 갱년기를 방치하면 동맥경화와 근감소증 등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김광민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남성호르몬 치료를 하면 협심증과 뇌졸중 발생률 등이 떨어지면서 치료받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남성호르몬 치료는 삶의 질뿐만 아니라 심혈관질환 가능성도 낮춰준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의대 임상병리팀이 40대 이상 퇴역 군인 858명을 대상으로 4년간 연구한 결과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250ng보다 낮은 남성은 정상 수치 남성보다 사망률이 75% 높았다.
근육량과 근력을 증가시켜 건강을 되찾는 것도 남성 갱년기 치료의 목표다.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우울증, 무기력증 등 심리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포화지방산 피하고 견과류 섭취 늘려야갱년기 치료는 보통 테스토스테론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중 근육에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해 호르몬 수치를 끌어올리는 호르몬 주사는 매일 투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 때문에 널리 쓰인다. 바이엘코리아의 네비도주사, 제이텍바이오젠의 예나스테론주 등이 대표적인 주사 타입 치료제다.
예나스테론주 등 단기간 지속형 주사제는 2~4주마다, 네비도 등 장기간 지속형 주사제는 10~14주 간격으로 맞으면 된다. 단기 주사제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단번에 높여 효과를 즉시 볼 수 있지만 그만큼 효과가 빨리 떨어진다. 장기 주사제는 테스토스테론을 조금씩 몸에 흡수시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균일하게 유지된다.
먹거나 피부에 붙여서 호르몬 수치를 조절하는 제품도 있다. 경구용 호르몬제는 식사 중에 기름기가 있는 음식과 함께 먹어야 하고, 하루 2회 이상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피부에 붙이는 경피제는 패치를 붙이는 부위를 제모해야 한다. 최근에는 콧속에 분무하는 형태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높이는 제품도 나왔다.
생활습관으로도 남성 갱년기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근력 운동을 하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지고, 여성호르몬이 생성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식습관 교정도 필요하다. 패스트푸드, 버터 등에 들어 있는 포화지방산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촉진하는 아연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으면 갱년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굴 게 새우 등 해산물과 콩 깨 등에 많이 함유돼 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