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59·사진)는 평생 월급을 받아본 일이 없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엔 영화를 만들었고, 이후 오랫동안 대중음악평론가로 살았다. 마흔 넘어 시작한 명리학 공부 덕분에 대중에겐 명리학자로 더 유명하다. 그가 2015년 쓴 《명리》라는 책은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글을 짓는 것만으로 밥을 먹기 충분했고 이름도 널리 알렸다. 그런 그가 3년 전부터 ‘월급쟁이’ 생활을 시작했다. 경기문화재단 대표로 기관장이 됐다. 지난 7일 강 대표를 경기 수원시 경기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생과 사주, 명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세 시간 동안 길게 풀어놓았는데도 지루할 새가 없었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1인극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경기문화재단 대표가 된 지 3년째다. 기관장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계기가 있었나.
“명리학 이야기를 듣겠다고 찾아왔으니 사주 이야기를 해야겠다. 2018년 11월에 처음 경기문화재단 대표 제안을 받았다. 무술년은 사주상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변화가 있을 만한 해였다. 연초부터 올해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연말까지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괜히 실언을 하고 다녔나 돌이켜보던 차에 경기문화재단에서 연락이 왔다.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친분도 없었고 상상해보지 못한 자리였다. 고민이 깊었다. 변화가 있는 해에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맞다는 생각에 대표직을 맡았다.”
▷명리학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
“마흔둘에 갑자기 쓰러졌다. 대동맥이 찢어져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장례 준비를 하라는 말까지 나왔다. 23일 동안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깨어났다.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의사는 삶이 길면 2년 정도 남았다고 했다. 걸어다닐 수도 없을 만큼 건강이 나빴다. 누워 있으니 옛 생각이 났다. 고등학생 때 놀러간 친구 집에서 우연히 친구 아버지가 사주를 봐줬다. 고등학생인 내게 “세 번 결혼을 하고, 42세엔 죽을 수도 있고 간신히 살아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두 번의 이혼과 경각에 달한 생명. 당시 내 처지였다. 후배에게 부탁해 서점에 있는 사주책을 다 사서 보내라고 했다. 그렇게 명리학을 공부할수록 명리학은 동양 철학이 인간을 바라보는 사유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의 욕망을 만나 저잣거리의 점술로 전락했지만, 만약 내가 더 살 수 있다면 명리학에 대한 명예를 회복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게 가능한가.
“운명은 운(運)과 명(命)으로 이뤄진 글자다. 명리학에서 ‘명’은 날 때부터 결정된 것으로 본다. 연월일시에 따른 사주팔자가 한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성격과 인생의 흐름을 담고 있다. 이게 명이다. 주어진 명 속에서 자유와 의지를 가진 인간이 선택을 통해 인생을 ‘운전’해 나간다. 예측 불가능한 선택과 자유가 ‘운’의 의미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건 전형적으로 세속화한 논리다.”
▷전 국민이 명리학 공부를 해야 한다 주장한다. 이유는 뭔가.
“사주를 보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디서 기뻐하는지, 어디서 성취감을 얻는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사주 상담이다.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타고난 것을 완전 연소시킬 수 있도록 조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보다 스스로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명리학 지식이 조금 어설퍼도 자신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스스로다. 게다가 인생에는 수많은 선택이 있다. 선택의 순간마다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할 순 없다.”
▷스스로도 자신의 사주를 보나.
“매일 본다. 인간의 성격과 미래를 파악하려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명리학이 뛰어난 점 가운데 하나는 성격 파악을 넘어 인생의 타이밍마다 선택을 하는 데 힌트를 준다는 거다. 물러서야 할 때와 나서야 할 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와 고독해야 할 때가 다르다. 사주를 들여다보면서 적어도 주어진 명에 반하는 선택은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사주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가장 중요하다.”
▷사주 상담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조언해 달라.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심과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누구에게나 있다. 사주 상담가를 찾고 돈과 시간을 쏟는 열정으로 차라리 직접 명리학 공부를 해라. 천간의 10글자와 지간의 12글자 한자만 알면 다음부터는 해석의 문제다. 알파벳보다도 수가 적다. 이런 정도의 공부로 평생 나를 지킬 수 있는 무기를 갖는다면 남는 장사 아닌가.”
글=나수지/강영연 기자 suji@hankyung.com